ARCHITECT IN DAEJEON

Park Mansik

 

박만식
朴萬植/Park Mansik.1935-


필자와 함께 

생년 월일 ; 1935.5.19.
출  생  지 ; 서울
학력  경력; 보성고,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 졸업,네델란드의 Bouwcentrum 건축계획과정 수료,충남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충남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 교수, 충남대학교 도서관장, 대한건축학회 대전충청지회장, 대전 디자인캠프 초대교장, 충청남도 문화재위원
저       서 ; 대전의 건축-Architecture in Taejon/건축문화의 해 대전광역시 지역추진위원회-1999.12.
                건축의 이해-Archittecture & You/기문당-1983.5.
                건축계획, 건축기초 설계제도, 건축사/문교부-1981,1982 

주요작품 ;  공주문화원/1963, 송암내과의원(+우규승)/1964, 문창동 성당/1966, 공주 중동파출소/1967, 공주 이경석의원/1968, 대전성모병원/1968~1997, 대전가톨릭문화회관(+원정수,지  순), 충남여성회관(+이창갑,박만식)/1970, 부여 규암성당/1971, 대구 파티마병원, 홍성고등학교 교사, 정동성당(+조대성), 방산여관, 용운동 안교수댁, 부여성당/1972, 광천성당,유천동성당, 청주 수동유치원/1973, 충남학생과학과학관(+이창갑,씨엔유건축), 가르멜수녀원, 전주 중노송동성당, 목동수녀원/1975, 천주교 대전교구청, 포항성모병원 계획안/1976, 칠곡 가톨릭병원, 홍재산부인과의원/1977, 천주교 청주교구청, 천안 성황동성당, 이리성모병원/1978, 충남대학교병원 기본계획(+시엔유건축)/1980, 흑석동 태양열주택/1985, 대전가톨릭대학교 종합계획(+씨엔유건축), 연산 성모의 마을(+씨엔유,동인건축), 대전성모병원 연구동(+씨엔유건축), 부평 성모자애병원/1998

관련문헌 ;

지역 현대건축의'산 증인' 

'모던한 디자인과 하얀 외벽에 빨강, 노랑등의 컬러로 액센트를 준 창호를 설치한 예쁜 건축물.' 지금이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건축물이지만 1960년대로 눈높이를 맞춰보면 한참 앞선 시도이고 안목이었다. 여기에 너나 할 것 없이 국적불명의 획일적인 평슬래브를 한 주택을 지을 당시 이를 배척, 메스에 굴곡을 가해 입체적인 벽면을 형성하고 경사지붕을 고수하는 건축어법을 지녔던 건축가.
 현재 충남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박만식 교수(64)가 그 주인공이다.박 교수의 대전 등장은 30세인 1964년 충남대학교에 몸담기 시작 하면서다. 58년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후 공군 시설장교로 입대, 62년 미국의 한 병원에서 인턴생활로 병원건축의 실무생활을 익히고 돌아온 박 교수는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외국에서 견문을 넓힌 건축가로 화려하게 데뷔한다.
  지역 건축계 1세대인 조정환(대전고 도서관), 배한구(농산물 품질관리원), 정진경(의사회관)에 이어 2세대라 할 수 있는 박 교수의 대전과의 인연은 공군 기술교육단 근무로 시작된다. 유학을 가기 위한 방편으로 선택한 공군 복무시절, 이미 공주문화원(現) 설계를 맡는다. 이듬해는 현재 재미 건축가로 활동중인 우규승씨와 함께 송암내과 의원(선화동)을 계획하면서 중소규모의 현대 건축물을 태동시키는 작업에 착수한다.
 지역 건축계의 활성화를 위한 박 교수의 노력은 66년도 대전 건축계가 불모지이던 시절, 지인 몇 몇과 함께 지역 건축사무소 시조라 할 수 있는 신문화건축연구소를 열면서 부터다. 1960년대 열악한 경제사정으로 인해 관공서 건물 중심으로 건물이 지어졌지만 근대 건축물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던 때. 극도의 단순함과 세련된 입면, 실험성이 강한 형태 추구 등 선진 외국 기법을 도입한 독특한 건축 세계를 열어간다.
 68년부터는 충대 교수 2인을 비롯해 제자들과 함께 74년까지 '씨엔유 건축연구소'를 운영했고, 80년대 들어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건축가, 건축사, 건축학회 3단체가 모여 실시한 건축디자인 캠프를 주도, 후진양성에 기여한다. 또 문화원 교양강좌, 시민강좌 등지에서 직접 찍은 사진과 환등기로 외국 선진 건축문화 소개작업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박교수의 작품으로는 60·70년대 지어진 충남·북 천주교 건축물(성당, 교구청)이 상당수 있다. 입면 구성보다는 평면과 실내 구성에 치중했고, 겉 멋 보다 사용자 중심에서 편익을 증대했다. 크고 작은 건물들 가운데 지금 살펴봐도 최근 건축물들이 갖지 못하는 개성과 파격적인 실험정신이 내재돼 있다.건축가 인생 40여년을 보낸 박 교수는 특히 병원건축에 일가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교수는 잘 지어 졌다는 국내 유명 병원을 설계한 주인공이다.
 대구 파티마 병원, 칠곡 피부병원, 이리 성모병원, 대전 성모병원, 충남대 병원을 비롯해 최근 설계를 마친 인천 성모자애병원이 그의 손을 거친 작품들. 병원 기능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병원 내 기자재의 용도, 특성 파악을 위해 박 교수가 기울인 노력은 간단치 만은 않는다. 69년 네덜란드의 Bouwcentrum 건축계획 과정을 수료한 후 유럽의 최신 건축요소를 도입해 대구의 덥고 추운 환경학적 난제를 해결한 대구 파티마 병원을 설계한다.
 병원 설계를 앞두고 일본 등지로 사전답사를 나서는가 하면 설계에 그치지 않고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국내 병원을 신축하는 일에도 앞장선다. 82년도에는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에서 객원교수로 재직하며 외국 건축에 대한 조예를 한층 깊게 한다. 외국 유학 시절 “슬라이드 필름 한 통이면 점심을 두 번 굶을 수밖에 없었던 때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끼니 거르기가 일쑤였다”는 박 교수는 1980년 들어 외부 활동이 뜸하게 된다.
  화려한 데뷔 못지 않게 주변의 시기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박 교수는 충남대 병원 기본설계를 마치고 지역 건축가들의 반발을 산다. 대형 프로젝트인 충남대 병원 설계에 교수가 참여한 것을 이유로 구설수에 오른 것. 법적 제재나 피해를 입을 내용이 아님에도 거센 반발에 부닥친 박 교수는 스스로 자유로운 활동을 자제하고 후진 양성에 집중한다.
 '건축가의 자세는 보다 많은 경험 통해 보여주는 것'이라는 박 교수.젊은 시절 영화제작과 사진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나무, 새집 등에 주의를 기울인다. 1995년에는 30년간 수집해온 백제토기 200여점을 국립 부여 박물관에 기증하고 “신라 백제토기 중심으로 "한국 조형양식의 균제 상태에 대한 분석연구”를 함으로써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학문으로 풀어놓는다. “모든 관심은 건축을 위한 것”이라는 박 교수가 후배 건축가들로부터 “지역 현대건축의 기초를 다진 건축가”로 존경받는 이유들이다.〈嚴殷和기자/1999.10.6.중도일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