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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FAMOUS ARCHITECT-KOREA

WORKS & LIFE

From 'Time' 2000,'AGRAM' architectural information,


 

김수근 Sooguen Kim/1931.2.20-1986.6.14

 
Member of '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 Honorary Fellow in 1982.
 
김중업과 함께 한국현대 건축의 1세대로 평가되는 김수근은, 경기중 2학년때 영어회화를 가르쳤던 미군 병사의 영향으로 건축에 눈을 뜨게 된다.  그때부터 건축가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 요소로서의 예술 전반과 인문학에 대한 폭 넓은 이해가 싹텄던 것이다. 그리고, 6.25전쟁이 일어난 이듬해 4월 그는 공부를 위해 서울대 건축과 2학년을 중퇴하고 돌연 일본으로 밀항, 도쿄 예대 건축과와 도쿄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60년 일본인 아내 야지마 미치코와 함께 귀국한다.
 그는 남산 국회의사당 설계공모에서 1등으로 당선, 단번에 주목 받는 건축가로 떠올랐다. 그 이듬해에는 주식회사 공간연구소의 전신인 김수근 건축연구소를 창설했다. 그 후 워커힐 힐탑바(1961년), 부여박물관(1967년), 오사카 엑스포 한국관(1970년), 건축사무소 공간사옥(1971년), 잠실 올림픽주경기장(1977년), 경동성당 등 걸작들을 창조해냈다. 또한, 건축, 환경 전문 월간지「공간」을 펴냈고, 1977년에는 소극장을 개관하여 전위극, 무용, 전통, 연희 등 각종 공연을 연간 500여회씩 치뤄 내기도 했다. 여기에서 ‘건축은 언어가 아니라 시멘트, 목재, 돌, 철재, 강철, 알루미늄, 세라믹, 유리를 사용해서 짓는 시이며 건축가 중에 시, 소설 모르는 사람은 별 볼일 없다’고 단언한 그의 종합 예술가다운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김인호 Inho Kim /1932-1988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한 건축가 김인호(金仁鎬)는 영남대학교 건축과 졸업, 영남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경상북도 문화재위원, (주)대아기술공단 대표, 대아건축설계연구소 대표, 불국사 복원설계위원, 한국건축가협회 대구경북지회장, 한국예술문화단체 대구직할시 지회장을 역임하였다. 1966년 대구체육관의 현상설계에서 당선이 되어 주목받기 시작하였으며, 불행히도 1967년 6월 한국 건축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대형사고인 청구대학 본관을 설계하였다. 제1회 대한건축사협회 한국건축전 대상, 경상북도 문화예술상을 수상하였고, 그가 추구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보나 도리의 머리가 서로 맞물려 교차한 우리의 전통 건축형식을 차용하거나, 기둥과 기둥간에 보나 서까래가 여유롭게 처마 아래로 빠져 나오는 형상을 도입하였다. 경북도청사, 대구시민회관, 화랑의 집, 안동문화관, 남대구 세무서,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대구 두류공원 축구장,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시 종합 복지회관, 부산 천태종 대법당 등과 대전에 경암빌딩을 설계한 바 있는 그의 특이한 재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김중업 Jungup Kim /1922-1988

 1900년대 식민지와 한국전쟁의 소용돌이로 인해 세계 건축의 흐름에 ‘소외’정도를 너머, ‘고집’으로 일관된 우리나라의 건축적 상황에서 서구의 모더니즘을 한국 건축으로 승화시킨 최초의 건축가이며, 자기만의 독특한 건축적 경지인 서양 건축의 한국화 혹은 한국건축의 현대화를 이룬, 한국 현대 건축사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건축가가 바로 김중업이다. 1922년 평양에서 5남 2녀중 차남으로 태어나, 어려서 부터 감수성이 예민하여 시와 그림에 탐닉하던 그는 그림교사의 권유로 요코하마고등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하여 파리 에꼴 데 보자르 출신의 나까무라 준뻬이교수 밑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고공을 졸업하고 1942년부터 일본의 한 건축사무소에 근무하다가 해방 전 귀국하여 여러 곳에서 일하며 혼란기를 보냈다. 1947년에는 서울공대 건축과 조교수가 되었으나 한국전쟁로 인해 부산 피난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문화, 예술인과 교류했고 그 인연으로 1952년 이탈리아 베니스로 건너가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게 되었다. 그 문하에서 새로운 유럽 건축을 보고 배우게 된다. 그의 프랑스 파리, 코르뷔지에 사무소 근무는 한국 현대건축 가의 첫 유럽진출이라는 의미로도 값진 것이다. 그는 4년간 협동으로 샨디갈의 '난트 아파트', 파리의 '브라질관' 등을 설계했다.
 1956년 귀국하여 홍익대 건축미술과 교수가 되었으며 건축활동도 병행했다. 1956년 한국으로 돌아온 후 자신의 사무실을 개설하면서 자신의 창조성을 보다 확대하고 미래를 향한 거대한 세계를 펼치는 작품활동을 하였으나 꼿꼿한 선비정신을 떠올리게 하는 성격, 비타협적인 작가의식때문에 군사정권과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해오다 1971년 11월 거의 반강제적으로 출국, 프랑스로 추방되어 해외에서 유랑생활을 하다가 1978년 11월 영구 귀국 했고, 1988년 5월 11일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서울대 교수, 홍익대 교수, 프랑스 공인건축가, 하버드 객원교수 등을 거치면서 필그림 홀 계획안(1956년), 부산대학교 본관 및 유수 대학의 건물들, 주한 프랑스 대사관(1959년), 부산 충혼탑(1980년), 서울올림픽 기념비(1985년) 등 국내외에 대략 200여개의 프로젝트와 작품을 남겼다. 이즈음 그의 건축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 '서강대 본관(1958)을 시작으로 하여 한국 현대건 축의 기점이 된 '주한프랑스대사관(1960), 이어 '제주대학 본관' (1962-95)을 발표, 그의 예술적건축작품성을 보여 주었다. 이 시기 그의 건축역(建築歷)은 최고조에 달했고 국제적 명성도 얻었다. 프랑스 국립방송국에서는 그의 작품을 영화화하기도 했다(1970). 1972년에는 미국의 건축잡지 Architectural Forum에 그의 작품 제주대학이 소개 되기도 했다.
 

 

류춘수 Chunsoo Ryu/1946.11.18-



 경북 봉화출생. 안동사범병설중학교 및 대구고 졸업(1964),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졸업(1970), 서울대 환경대학원 조경학 졸업(1985), 공간연구소 근무(1974-1986), 1986.10 '이공건축'개설, AIA 명예회원 수여(2008). 작품;한계령 휴게소(1979), 리츠칼튼호텔(1989), 2002서울 월드컵경기장(1998).
 

박만식 Mansik Park/1935-

우규승 Gyusung Woo/1939-

원대연 Daeyeon Won /1943-



 황해도 해주 출신.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졸업. 충북 진천군 이월면 농촌에 '아트 빌리지'를 설계하여 짓고 살고 있는 건축가. 건축잡지 월간 '플러스'를 창간한 발행인으로 작품으로는 롯데호텔 본점, 현대백화점, 롯데월드'민속관', 상촌재 등 이 있다. 현재 홍익대 겸임교수인 그는 일상과 건축문화의 관계를 설명한 ‘여행 넘어서기 1·2·3’을 펴내기도 했다.
 사진작가인 부인 이숙경여사의 호를 따서 지은 살림집 ‘상촌재’는 소박한 멋이 배어나는 농가이며, ‘이월성당’은 인도 사암으로 통일한 마감재가 평범한 시골마을의 경치와 잘 어우러지는 성당이다. 특히 측면의 천창을 통해 떨어지는 빛, 좁은 공간에 아무런 장식 없이 소박하게 꾸민 제대는 감흥을 주는 종교적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그의 의지가 담겨져 있기도 하다.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은 ‘이원아트빌리지’는 절경이 아닌곳에 아름다운 집을 짓고자 한 건축가의 의도가 잘 표현된 장소이며, 숨은 공간이다. 적삼목 너와를 낮게 이은 지붕이 이리 저리 머리를 마주하고 있는 소박한 마음을 보여주는 ‘건축적인 마을’로 환경친화적 건축을 시도하여, 공사 현장에 버려진 폐자재들을 많이 재활용하였다. 또한 기반공사 때부터 소나무와 야생화를 함께 심어 어울리게 하였다. 마치 이 마을은 좁은 골몰길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유럽 지중해의 어느 마을을 연상케 한다. 전체적으로 경사진 지형을 그대로 살려 계단이 많으며, 이 부분을 잘게 나누어 샛길로 이어주어 지나가면서 변화하는 공간을 느끼게 한다. 빛과 계단-그리고 공간의 구선이 이 마을을 우리전통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한다.

유원준 Wonjoon Yu/1909-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