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건축

전통건축 아산-01

참고문헌;'충남의 건축(충청남도, 충남발전 연구원 발핼/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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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세곶 창고지(貢稅串 倉庫址)
Gongsegot Warehouse Site

 

대 지 위 치 ;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193, 193-15
지 역 지 구 ; 취락지구, 준도시지역

대 지 면 적 ; 15,636㎡
수         량 ; 1개소
준 공 년 도 ; 조선시대 초기
문화재구분 ; 기념물 제21호/1979.7.3.

 공세리 성당으로 들어가려고 마을을 들어서면 좁은 길목에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가로 막는 성벽이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 수로교통의 요지인 인근의 조선시대 조세로 내었던 곡식을 저장하였던 조창(漕倉의 하나인 공진창(貢進倉)이 있었던 자리이다. 공세곶창(貢進串倉)은 공진창의 처음 이름이다. 이곳에서 충청도 각지의 곡식을 모아 두었다가 일정한 시기에 서울로 옮겼다. 조선조 1478년(성종 9년)부터 이곳에 세곡 해운창을 설치 운영해 오면서, 초기에는 창고없이 연해안 포구에 곡식을 쌓아 두었으나, 1523년(중종 18년)에 80칸의 창고를 마련하고 이름을 '공진창'이라 하였다.
 공진창에는 곡식의 운송을 위하여 적재량 800석의 조선(漕船) 15척과 운반인 720명이 배치되었고, 곡식의 수납과 운송의 책임자로 해운판관(海運判官)이 임명되었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조창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충청도 도사로 하여금 겸임하게 하다가 1762년(영조 38년) 이후에 아산 현감이 관리하도록 하였다. 19세기에는 조창 자체가 폐지되어 창고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내 버려 두었다가 1897년 성당으로 개조되었다. 현재 창고지 주변에는 당시 세운 성벽만이 남아있다. 이 성벽의 모퉁이에 문화재자료 제238호(1984.5.17.)인 삼도 해운판관비(三道 海運判官碑) 6기가 남아 있는데, 이 비들은 해운판관들의 깨끗한 덕행과 바르고 착한 다스림을 기리는 기념비이다. 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649년(인조 27년)의 것이고, 최근의 것은 1708년(숙종 34년)의 것이다. 본래 창고지의 앞과 도로변에 돌을 쌓아 올린 석축 일대에 흩어져 있던 것을 한자리에 모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