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건축

전통건축 천안-00

참고문헌; 한국관광공사 홈사이트, 국가문화유산 종합정보사이트

 

001

광덕사(廣德寺)
Gwangdeoksa/Temple

 

 

대 지 위 치 ;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 640
지 역 지 구 ; 자연녹지지역
준 공 연 도 ; 창건 637년 중건 832년

 광덕사는 천안을 대표하는 토산품인 호두나무의 원류로 유명한 사찰로 신라 선덕여왕 때(637년)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흥덕왕 때(832년) 에 진산화상이 중건했다고 전해진다. 아산시와 천안시의 경계를 이루는 광덕산(699.3m) 동남쪽, 그리고 태화산(455.5m) 서남쪽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일주문 앞쪽은 '태화산 광덕사', 뒷쪽은 '호서제일선원'이라는 편액이 걸 려있고 참선을 수행하는 스님들의 도량임을 짐작케 한다. 조선 초기에 세조가 지병을 치유하려고 다녀가기도 했 다는 일화가 전해내려오며 임진왜란 전까지는 충청, 경기 지역에서 가장 큰 절로 꼽힐 정도로 사세가 컸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거의 불타버려 옛 영화는 찾을 수 없고 대웅전을 비롯, 명부전, 천불전 등 주요 전각들은 대부분 근래에 새로 지었다.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보화루 앞에는 몇백년 묵은 호두나무가 서 있고 요 사채 옆에도 키 큰 호두나무가 서있어 이곳 광덕사가 호두의 원적지임을 알게 해준다. 광덕사는 비구니스님들이 수도하는 곳이어서 그런지 비교적 단아하게 단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한국관광공사 사이트, 신건이 사진 작품집/2000

 

002
각원사(覺願寺)
Gakwonsa/Temple

 


 

대 지 위 치 ;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산 98-83
지 역 지 구 ; 자연녹지지역

준 공 연 도 ; 1977년

 천안의 기둥산인 태조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 재일교포 각열거사(覺列居士) 김영조(金永祚)의 시주로 1977년 5월에 세워졌다.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사찰을 세우려 한 것이 발원의 본뜻으로 현재 이곳에는 대웅전(大雄殿), 설법전, 관음전(觀音殿), 성종각, 경해원 등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높이 12m, 둘레 30m, 무게 60t에 이르는 거대한 청동아미타불상과, 엄청난 규모의 태양의 성종이 특히 유명하다. 또한 1996년 10월 15일에 낙성된 대웅전은 목조 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이다. 이 절의 언덕에는 203개의 계단이 있는데, 이것은 백팔번뇌와 관세음보살의 32화신, 아미타불의 48소원 및 12인연과 3보(寶) 등 불법과 관계있는 숫자를 합해서 정한 것이라 한다. 경주 불국사(佛國寺) 이래 최대의 사찰이며, 현재 각원사 관광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003
성불사(成佛寺)
Seongbulsa/Temple

 

  

대 지 위 치 ;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178-8
지 역 지 구 ; 자연녹지지역

문화재 구분; 충청남도문화재 제10호/1984.5.17.
준 공 연 도 ; 조선시대

 상명대와 호서대를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태조산(太祖山) 서쪽자락 중턱의 급한 경사길을 따라 오르듯히 위치한 성불사는 가곡에 나오는 황해도 사리원시의 사찰과 같은 명칭의 절로 대웅전 뒤에 있는 커다란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부조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호로 지정되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로 대웅전 뒤의 암벽에 흰 학이 부리로 쪼아 불상을 만들다가 완성하지 못하고 날아가 버려 불상을 다 이루지 못한 절이라는 뜻의 '成不寺'라 불렀다가 후에 도선국사가 절을 짓고 '成佛寺'라 하였다 한다. 경내에는 대웅전, 산신각, 칠성각, 요사 등이 있으며 규모는 작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 불단(佛壇)을 마련하지 않고 유리창너머 암벽에 조각된 마애불상을 본존불로 모시고 있다. 불상의 높이는 220㎝이다.

 

004
은석사(銀石寺)
Eunseksa/Temple

 

대 지 위 치 ; 천안시 동남구 북면 은지리 산1
지 역 지 구 ; 자연녹지지역

준 공 연 도 ; 조선시대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해발 고도 455m의 은석산 기슭에 창건한 사찰이다. 창건할 당시에는 제법 큰 사찰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퇴락함에 따라 여러 차례 개수하면서 옛 모습은 사라지고 규모도 작아졌다. 조선시대에는 인조 때의 문장가인 백곡 김득신(金得臣), 월봉 이극태를 비롯해 학촌 권 현, 사정 유지림, 도원 김만중, 송정 김대년, 백은 김 면, 전은 한 빈, 만호 황곡림 등이 은석산 시사를 두고 이곳에 모여 학문을 닦으며 문장을 익히고 강론하였다. 또 국봉 남취흥, 만화 유진한, 무경 김중산, 유도천, 어은 유철한, 황성 유도행 등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시와 문학을 공부하며 풍류를 즐기기도 하였다. 병천 순대로 유명한 읍내에서 좁은 소로길을 따라 4km정도 산으로 오르면 있는 이 사찰은 입구에 유명한 '박문수어사의 묘'가 있다.

 

005
천흥사지(天興寺址)
Cheonheungsa Site,Dangganjiju & Pagoda

대 지 위 치 ;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234
문화재구분 ; 당간지주-보물 제99호, 5층석탑 제354호/1963.1.21.
준 공 연 도 ; 고려시대

 고려 태조 4년(921년)에 창건되었던 천흥사의 당간지주로 현재 천안시 천흥리 마을의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절에서는 의식이 있을 때 절의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동·서로 서있는 두 지주는 60㎝의 간격을 두고 있으며,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세워졌다. 기단은 흩어져 있던 것을 복원하였는데 기단 주위에 안상(眼象)을 새겨넣어 당간지주의 장식화된 측면을 보이고 있다. 동·서 지주 사이로 깃대를 직접 받치던 받침은 남아있지 않다. 안쪽면에 조각이 없으며 상단 꼭대기끝 한 곳에만 깃대를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난 구멍이 있다. 지주의 바깥 면은 위에서 아래까지 중앙에 1줄의 선을 새겼다. 지주 각 부의 양식에서 통일신라시대의 형식을 지니고 있으나 퇴화된 기법으로 만들어져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특히 천흥사터에서 출토된 천흥사 동종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고려 현종 원년(1010)으로 되어 있어 이 당간지주도 절을 창건하면서 같이 세운 것으로 보인다.
 천흥사터에 서 있는 고려시대의 5층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거대한 모습으로, 고려왕조 시작 직후 석탑의 규모가 다시 커지던 당시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 탑신을 받치고 있는 기단은 아래층이 너무 얕아 마치 1층으로 된 듯 하다. 아래층 기단의 4면에는 각 면마다 7개씩의 안상(眼象)이 촘촘히 조각되어 있다. 위층 기단의 4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겼다. 몸돌은 4면의 모서리에만 기둥 모양을 뚜렷하게 새겨놓았고,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줄어드는 비율이 비교적 완만하다. 지붕돌은 얇고 너비가 좁으며, 밑받침이 3단으로 매우 얕게 조각되었다. 경사면은 가파르다가 이내 수평을 이루고 있어 그 반전감이 크고, 네 귀퉁이에서의 들림은 날아갈 듯 가뿐하다.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돌의 구성에도 규율성이 있다. 특히 탑신에서 보이는 완만한 체감율은 온화하고 장중한 느낌을 더해준다.  

 

006
천안 삼태리 마애여래입상(天安 三台里 磨崖如來入像)
Cheonan Samtaeri Maeyeorae Buddhist Statue

 

대 지 위 치 ; 천안시 풍세면 삼태리 산27
문화재구분 ; 보물 제27호/1963.9.3.
재          료 ; 화강암
준 공 연 도 ; 고려시대 후기

 태학산의 해선암(海仙庵) 뒷산 기슭 큰 바위에 높이 7.1m나 되는 거대한 불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마애불 윗부분의 바위에는 비와 이슬을 막기 위하여 건물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얼굴 부분은 도드라지게 조각하고 신체는 선을 이용하여 표현하였는데, 이는 고려 후기 마애불의 일반적인 양식으로 이 작품이 만들어진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민머리 위에는 둥근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큼직하게 솟아 있다. 살이 올라있는 넓적한 얼굴은 가는 눈·커다란 코·작은 입으로 인해 더욱 경직된 인상을 풍기어 조금은 경직된 모습으로,눈 꼬리가 옆으로 길게 뻗어있다. 목은 짧아서 거의 없는 것 같이 보이며 이로 인하여 목에 있어야 할 3줄의 삼도(三道)는 가슴까지 내려와 있다. 어깨는 넓기만 할 뿐 양감이 없으며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묵직하게 처리하였다. 상체와 양쪽 옷자락에는 세로선의 옷주름을 표현하였고 하체에는 U자형의 옷주름을 새겼는데, 옷주름은 좌우가 대칭을 이루고 있어 도식화된 면을 엿볼 수 있다. 전체로 상체는 돋을새김으로 하였고, 하체로 내려갈수록 선으로만 표현하였다. 두 손은 가슴까지 들어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했으며 오른손은 왼손 위에 손등이 보이도록 하였다. 이는 고려시대 유행하던 미륵불상의 손모양으로 이 불상의 성격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불상은 전체적인 형태나 얼굴 모습, 옷주름의 표현 등에서 고려시대의 불상 양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형 마애불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이 마애불은 태학산 휴게림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어, 주변 약수터와 공원으로 통하는 진입로를 통하여 들어가야 하는데, 마애불 아래에는 조계종의 '법왕사'와 태고종의 '태학사'가 나란히 위치하여 한 길로 오르면서 두 개의 다른 사찰이 각각 접점을 이루고 있어 특이하다.

 

007
전씨 시조 단소 및 재실(全氏 始祖 壇所 및 齋室)
Altar & Shrine of the Founder of Jeon's Clan

 

대 지 위 치 ; 천안시 풍세면 삼태리 219
문화재구분 ; 충청남도 문화제자료 제297호/1987.12.30.

전망 좋고 편편한 작은 골자기레 양지 바르게 위치한 이곳은 온조가 백제를 건국할 때 개국공신 십제중의 한사람이었던, 천안 전씨의 시조 환성군(歡城君) 전  섭( 全  攝)의 유적이다. 가장 높은 곳에는 전 섭의 단이 있으며, 그 아래로 좌측에는 고려 충열왕때 문신 문충공 전 승의 단이, 우측에는 고려말 문신이며 청백리인 문효공 백헌 전 신(1276-1339)의 단이 있다. 또한 충효사에는 환성군 전 섭을 배향하였고, 양현사에는 백헌 전 신과 남악 이 협을 배향하였으며, 검계서원은 백헌이 건립하였으나, 한 때 폐지되었다가 후에 복원하였다. 외삼문 앞에는 세분의 신도비가 있으며, 매년 3월 10일에 유림들이 양현사에서 제향을 올린다. 단과 재실이 바로 연이어 있어 관리가 무척 용이함과 동시에 주변의 풍광과 잘 어울리어 전통 건축의 미를 한 것 뽐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