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건축

전통건축 청양-00

참고문헌; 한국관광공사 홈사이트, 충남의 건축(충청남도,충남발전 연구원 발핼/1999), 국가문화유산 종합정보사이트

 

001
장곡사 상대웅전(場谷寺 上大雄殿)
Upper Daeungjeon of Janggoksa/Temple


대 지 위 치 ;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15
지 역 지 구 ; 산림보존지구
주 요 용 도 ; 사찰
준 공 년 도 ; 창건/통일신라시대
문화재구분 ; 상대웅전/보물 제 162호/1963.1.21.
 
 칠갑산 남쪽 기슭에 자라잡고 있는 가람으로 신라 문성왕 12년(850년) 보조선사 체징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하여 지며 이후 오랜 기간을 거쳐 중수를 거듭했다. 국보 58호 장곡사철조약사 여래좌상부석조대좌, 국보 300호 장곡사미륵불괘불탱화, 보물 162호, 181호인 상하대웅전, 보물 174호 장곡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부석조 대좌, 보물 227호 금동약사여래좌상, 유형문화재 273호 설선당등 전 국적으로도 보기드문 많은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또한 장곡사는 다른 가람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상하대웅전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 징이며 약사여래기도 도량으로 유명하다. 귀중한 문화재를 많이 소장 하고 있는 천년고찰로 전국에서 신도들과 관광객 많이 찾고 있다.
 보조국사(普照國師)에 의해 통일신라 때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곡사의 배치는 크게 2개의 구역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상대웅전 구역이고, 다른 하나는 중정을 중심으로 하는 하대웅전 구역이다. 이렇게 2개의 금당을 하나의 가람에 배치하는 것은 그리 흔치않다. 상대웅전 위치에서 사찰이 시작되어 나중에 절이 커지자 하대웅전 구역이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상대웅전(上大雄殿)은 고려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아있는 기록을 보면 1778년 재건된 것으로 되어있다. 상대웅전 내부의 불상이나 석조대좌 등이 모두 10∼11세기의 작품이어서 상대웅전도 이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기둥에는 강한 배흘림이 남아 있는 다포식 건물로 세부적으로 고려시대의 건축기법을 보이고 있다. 원래는 주심포식 건물이었으나 후일 개수하면서 다포식으로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특이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 건물 안쪽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으며, 그 중에는 통일신라 때 것으로 보이는 잎이 8개인 연꽃무늬를 새긴 것도 섞여 있다.

참고문헌; 충남의 건축(충청남도, 충남발전연구원/1999), 한국관광공사 사이트, 국가문화유산 종합정보사이트

 

002
장곡사 하대웅전(場谷寺 下大雄殿)
Lower Daeungjeon of Janggoksa/Temple

 

대 지 위 치 ;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15
지 역 지 구 ; 산림보존지구
주 요 용 도 ; 사찰
준 공 년 도 ; 창건/통일신라시대
문화재구분 ; 보물 제 181호/1963.1.21.

 장곡사는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으나 조선 정조 1년(1777년) 고쳐 짓고 고종 3년(1866년)과 1906년, 1960년에 크게 고쳐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절은 지형을 따라 위아래에 2개의 대웅전이 있는 특이한 배치를 하고 있다. 상·하 대웅전은 서로 엇갈리게 배치되었는데, 하대웅전은 상대웅전보다 훨씬 낮은 곳에 동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하대웅전(下大雄殿)은 건물의 구조와 양식수법으로 보아 조선 중기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데,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보면 소박한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에 화려한 다포 양식을 가미한 것은 보기 드문 예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나포양식이다. 기둥에 약한 배흘림이 있는 원주를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측면에 풍판을 달았음에도 사면에 공포를 배치한 점이 특징이다.

참고문헌; 충남의 건축(충청남도, 충남발전연구원/1999), 한국관광공사 사이트, 국가문화유산 종합정보사이트

 

003
장곡사 설선당(長谷寺 說禪堂)
Seolseondang of Janggoksa/Temple


 

대 지 위 치 ;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15
지 역 지 구 ; 산림보존지구
주 요 용 도 ; 사찰
준 공 년 도 ; 17세기 초기
문화재구분 ; 충남유형문화재 제 151호/1997.12.23.                   

  보조국사(普照國師)에 의해 통일신라 때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곡사의 배치는 크게 2개의 구역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상대웅전 구역이고, 다른 하나는 중정을 중심으로 하는 하대웅전 구역이다. 이 설선당은 하대웅전 구역인 아래쪽에 설치되어 있는, 달어내기가 뚜렷하게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건물이다. 설선당(說禪堂)은 17세기초 원래 선방으로 지어졌다가 부엌쪽으로 2칸을 달아내어 요사로도 사용하고 있다. 건립연대는 하대웅전 건립시기와 비슷한 17세기초로 추정된다. 원래는 정면 4칸, 측면 3칸 이었으나 나중에 부엌을 넓히고 서편으로 3칸의 승방을 덧붙치면서 현재와 같은 'ㄱ'자형 평면이 되었다.
 장곡사의 2개 대웅전 중에 하대웅전과 같이 조선 중기에 지어진 설선당은 하대웅전 왼쪽에 동향하여 세워진 스님들의 거처이다. 건물 앞면에 ‘설선당’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어 말씀을 논하고 참선을 위한 곳인 동시에 비구니 스님들이 수도하는 곳임을 나타낸다. 건물 앞쪽에서 보면 오른쪽 3칸은 기둥이나 지붕을 받치는 공포가 정교한 구조와 양식을 보여 원래의 건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왼쪽으로 이어지는 2칸은 그 구조와 양식이 변형을 보이고 있어 이는 후에 보수되었거나 다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충남의 건축(충청남도, 충남발전연구원/1999), 국가문화유산 종합정보사이트

 

004
우산성
Usanseong/Fortress

 

대 지 위 치 ; 청양군 청양읍 읍내리 4-2외 7필지
규          모 ; 965m 폭-6m
면          적 ; 60,755㎡

재          료 ; 석축
문화재구분 ; 충남기념물 제81호/1989.12.29 

준 공 년 도 ; 백제시대

 청양읍 읍내에 인접해 있는 성으로 읍내리, 송방리, 백천리에 걸쳐 있는 성은 백제시대에 축성한 산성으로 길이가 965m에 달한다. 우산의 2개봉의 산정과 산곡의 자연 지형에 따라 축성한 성이 다. 성의 형태는 대부분이 양쪽에 돌로 쌓아 가운데에는 흙을 채웠으 며 폭이 6m에 이른다. 성벽에 사용한 돌은 대개 30㎝x20㎝, 40㎝x20㎝ 정도의 자연석을 사용했으며 동쪽과 북쪽의 일부에 당초의 석 축 모습이 남아 있어 백제 당시의 축성술의 발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성내에는 3개소의 문지가 있었는데 남쪽이 주문인 듯 하며 성내에 서 토기편과 와편이 출토되는데 백제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넓게 출 토된다. 청양시가지와 인접해 있고 입구에 보물 제 197호로 지정된 청양 석조삼존불입상과 문화재자료 제148호로 지정된 청양삼층석탑 등이 있어 많은 사람들의 가벼운 산책코스로 사랑 받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관광공사 사이트

 

005
서정리 구층석탑(西亭里 九層石塔)
Seojeongri 9th Floors Pagoda


대 지 위 치 ; 청양군 정산면 서정리 16
규          모 ; 1기
문화재구분 ; 보물 제18호/1963.1.21.   
준 공 년 도 ; 고려시대

 정산은 충남 내륙지방의 교통요충지로, 공주에서 청양으로 들어서는 길목의 벌판 가운데에 서 있는 이 탑은 부근에 고려시대 백곡사(白谷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나 주위에 기와조각 등이 흩어져 있을 뿐이다. 탑은 2단의 기단 위에 9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眼象)을 돌려 새겼는데, 바닥선이 꽃모양으로 솟아올라 있어 고려시대의 양식상 특징을 드러낸다. 윗층 기단에는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그 위로 알맞은 두께의 돌을 덮어 안정된 모양새를 띠고 있다. 탑신 1층이 큰 점이 특징적인데, 2층부터는 높이가 뚜렷하게 줄어들지만 넓이는 크게 좁아지지 않아 우아한 느낌이다. 지붕돌은 아랫면에 1층은 5단, 나머지 층은 3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네 귀퉁이가 약간씩 치켜올라가 있다. 전체적으로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석탑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9층이나 되는 층수로 인해 형태가 매우 높아져 안정감이 부족하다. 각 부분의 세부적 조각양식이나 기단의 안상을 새긴 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006
모덕사(慕德祠)
SModeoksa/Shrine


  

대 지 위 치 ; 청양군 목면 송암리  
주 요 용 도 ; 사묘재실
준 공 년 도 ; 1914년
문화재구분 ; 충남문화재자료 제 152호/1984.5.17.                   

 연못에 영롱하게 어울려져 보이는 사당은 흔치가 않다. 공주와 접견을 이루는 국도에서 20여분 지방도를 따라 가다보면 연못을 끼고 있는 모습이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조선시대 대학자이며 위정척사운동을 주도한 의병대장인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의 항일투쟁과 독립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14년 창건된 사당으로 영정 과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유품도 전시되어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영당(影堂)을 비롯하여 고택과 중화당, 장서각(藏書閣), 춘추각 등이 있으며, 매년 4월 13일 항일의거기념 추모제가 열린다. 이후 최익현은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007
인양 해인정(海仁亭)
Inyang Haeinjeong

대 지 위 치 ; 청양군 청남면 인양리
규          모 ; 1기

 부여를 향하는 지방도변으로 마을을 따라 형성된 언덕위에 있는 정자이다.

 

008
일사정(一沙亭)
Ilsajeong

대 지 위 치 ; 청양군 청남면 천내리
면         적  ; 5평
증축 시공   ; 이호남(李浩男)
준 공 년 도 ; 1548년(2001년 중수)

 부여로 이어지는 국도를 따라 금강변에 위치한 이정자의 주인은 퇴암(退庵) 담양 전석우(全錫禹)공으로 이조참의를 지낸분으로  문과를 거쳐 내외부의 여러직을 마치고 은퇴하여 이곳에 세운 정자이다. 호서지방의 5강 8정중 하나로 꼽힌다.

 

009
정산향교(定山鄕校)
Jeongsan Hyanggyo/Shirine

 

대 지 위 치 ; 청양군 정산면 서정리 516-2
주 요 용 도 ; 향교
규         모 ; 대성전/정면 3칸 측면 3칸, 서재/정면 3칸 측면 2칸, 동재/정면 4칸 측면 2칸
면         적 ; 7,071
준 공 년 도 ; 조선시대
문화재구분 ; 충남기념물 제 132호/1997.12.23.

 정산읍사무소 뒷편에 자리한 이 정산향교는 마을의 안 뜰 나즈마한 구릉에 오래된 고목과 함께 자리하였으며, 마치 곡간 건물처럼 보이는 정면은 2개층 모두를 여닫이 문으로 장식한 출입구에 그려진 세 개의 태극문양이 선명한 깊은 인상을 주고 있는 건물이다. 1530년(중종 25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정산현〉에 “鄕校在縣東一里”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시대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태조 때 건립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묘로 대성전·신문(神門)·동서협문 등이, 향교로 배우는 공간으로 강당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였던 동재와 서재를 비롯하여 강학루와 전사청(典祀廳) 등이 있다. 제사공간으로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명륜당 뒤편에 있다. 헌종 때 중건한 것이며, 중국의 5성(공자·안영·증자·자사·맹자), 4현(주돈이·정호·정이·주자)  및 국내 18성현(설총·최치원·안유·정몽주·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김인후·이이·성혼·김장생·조헌·김집·송시열·송준길·박세채)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2월과 8월에 상정일(上丁日)에 석전대제를 거행한다.
 향교 입구에 2층의 정아루가 있고, 정면에 명륜당이 있다. 명륜당 왼쪽에 정면 4칸 측면 2칸의 동재가, 오른쪽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서재가 있다. 서재는 오른쪽 및 왼쪽 기둥이 경내의 담장과 연결되어 있으며, 오른쪽 및 왼쪽의 고주(高柱)와도 담장이 연결되어 있어 측면 1칸이 경외쪽으로 튀어나왔다. 명륜당 기단과 연결되는 동재의 옆면과 뒷면에는 기단이 없다. 전체적으로 건물의 형태는 전형적인 향교 배치인 전당후묘(前堂後廟)를 따랐다. 1994년 동재와 서재의 기와·벽체·기단 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였고, 서재와 정아루 사이의 시멘트 벽돌 담장을 해체하고 한식막돌 담장으로 다시 쌓았다.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된 모든 부분을 해체하고 자연석으로 대체한 점이 주목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학생을 많이 가르쳤으며, 갑오개혁 이후 교육 기능은 사라지고 현재는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만 하고 있다.

 

010
청양향교(靑陽鄕校)
Cheongyang Hyanggyo/Shirine

 

대 지 위 치 ; 청양군 청양읍 교월리 34-1
주 요 용 도 ; 향교
면          적 ; 10,830㎡
준 공 년 도 ; 조선시대
문화재구분 ; 충남기념물 제 133호/1997.12.23.

청양읍내에서 공주, 정산으로 향하는 국도에서 1km정도 들어서면, 교월리 마을 가운데 위치한 이 청양향교의 건립시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권지19  청양현(靑陽縣) 학교조(學校條)에 '향교(鄕校) 재현동일리(在縣東一里)'라 한 것이 이 향교를 지칭하는 것이니, 조선시대 초기에 이미 이곳에 향교가 있었고 문묘(文廟) 또한 향교와 같이 시건(始建)되어 내려 오는 것이다. 현존하는 향교와 문묘의 제 건물은 조선 중엽 이후의 건물로 1851년(인종 2년)에 대성전(大成殿)이 중수(重修)되었고, 1874년(고종(高宗) 11년)에는 향교와 대성전의 중수가 또 있었으며, 1874년(고종 41년)에는 대성전을 또 중수하였으며 그 후에 여러차례의 부분수리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주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서재, 동재, 관리사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