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건축

전통건축 당진-00

참고문헌; 충남의 건축(충청남도,충남발전 연구원 발핼/1999), 국가문화유산 종합정보사이트'

 

001  
필경사(筆耕舍)
Pilgyeongsa


설         계 ; 심  훈
대 지 위 치 ;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 251-12
지 역 지 구 ; 준농림지역
건 축 면 적 ; 63㎡              
연   면   적 ; 63㎡     
규         모 ; 지상 1층
구         조 ; 목조 한식
주 요 용 도 ; 주거시설
준 공 연 도 ; 1934년
문화재 구분; 충남기념물 제107호(1997.12.23)

 이 가옥은 항일시인이자 계몽문학의 선구자인 심  훈(沈  薰/1901-1936)선생이 직접 설계하여 지은 주택이다. 주변에 몇 채의 민가와 함께 자리잡고 있는 이 건물은 대문이나 부속채 없이 '一'자형 단독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집 뒤로는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으며, 앞쪽에는 상록수 문화관이 위치해 있다. 평면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초가집이어서 외관으로 보면, 전통적인 초가집 모양을 하고 있으나, 내부 평면은 1930년대 도시주택의 기능에 맞추어 생활에 편리하도록 구성되었다. 당시 도시주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면형태 중에서 화장실과 욕실을 실내에 설치해 두는 형식을 채용하고 있으며, 또한 유리창을 달아 내부를 밝게 처리함으로써 전통주거의 실내와는 구별된다. 뿐만 아니라, 마루방과 사랑방 외부에 작은 베란다를 설치하여 화분을 놓도록 배려하였다.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전체적인 모습은 농촌마을 경관에 어울리게 한국의 전통적인 외관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준공직후 심  훈 선생이 직접 '필경사(筆耕舍)'라는 당호를 붙혔다고 한다.
 서해안고속도로 개통 이후 새로이 각광을 받는 문학유적지로 송악 나들목을 빠져나온 뒤 한진나루에 닿기 직전 상록초등학교를 지나는 곳에 위치한다. 건물은 남동향에 정면 5칸 측면 2칸 으로 구성되어 있고 바로 앞에는 상록수문화관 건물이 들어서있다. 문화관 뜰에 서면 아산만의 물결과 서해대교가 한눈에 잡힌다. 한편 현지의 석비 후면에는 선생의 출생지가 서울 노량진동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뒤로는 대숲이 우거져 바람이 불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를 털어낸다. '상록수'의 주인공 채영신과 박동혁이 이 마을에서 농촌계몽운동을 폈던가. 그러나 채영신의 본 인물 최영신은 경기도 반월의 샘골마을에서 농촌운동을 하던 여인이고 박동혁은 심  훈의 조카로 역시 농촌 운동을 하던 심재영의 소설 속 인물로 두 사람은 실제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였다. 어쨌든 최영신의 고향에는 수도권 전철 상록수역이 세워져 있고 이곳 심재영의 고향에는 상록초등학교가 서 있어 두 사람 의 소설 속 행로가 완전히 허구의 산물만은 아니었음을 느끼게 한다. 심훈은 1933년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부친 이 살고 있는 이곳으로 내려와 <영원의 미소>, <직녀성> 등을 집필하였 다. 1934년 독립하면서 직접 설계하고 지은 집이 바로 필경사로 심  훈선생은 1935년 이 집에서 대표적 농촌소설인 '상록수'를 집필했다. 필경사는 한동안 장조카인 고 심재영옹이 관리하다가 당진군에 기부하여, 현재는 군에서 직접 관리를 하고 있다. 마당에 서있는 '그날이 오면'이 새겨진 시비는 1996년 한국문인협회가 세운 것이다.
 

참고문헌; 충남의 건축(충청남도, 충남발전연구원/1999), 한국관광공사 홈사이트

 

002  
영탑사(靈塔寺)
Youngtabsa/Temple



대 지 위 치 ; 당진시 면천면 성하리 560
지 역 지 구 ; 자연녹지지역
규         모 ; 전면 5칸 측면 3칸

준 공 연 도 ; 신라 말엽
문화재구분;
비로자나 금동 삼존 불상-보물 제409호, 석조 약사유리광여래불(마애불)-지방유형문화재 110호
                  7층석탑 (고려 중엽)-지방문화재 216호, 동종(銅鍾) (조선시대)-지방문화재 219호

 상왕산(210m) 동쪽 기슭에 있으며 신라 말엽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후 고려 충렬왕 때 보조국사가 중건했다고 전한다. 대웅전에는 보물 제409 호인 비로자나 금동삼존불상이 있고 절 주변 기슭에는 많은 괴목과 소나무가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7층석탑은 자연 암석 위에 쌓아 올린 독특한 것이다. 영탑사 범종에는 1760년 2월 가야사 법당 금종을 백근의 금을 녹여 만든다(乾隆25年 庚辰2月 伽倻寺法堂金鍾百斤金入重造成也)는 기록이 있고 덕산, 홍주, 면천의 시주한 신도들의 이름이 있다. 가야사는 흥선대원군이 아버지 남연군 이 구(李 球 1788-1836)의 묘를 쓰기 위해 불태운 절로 유명한데, 그 절의 금종이 이 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현재까지 알려져 있지 않다. 들어서는 통로로 따라 오르면 넓은 마당과 함께 펼쳐있는 가람의 배치가 너른 오픈형으로 되어 있는데다가, 지형에 따라 자리하여 앞마당의 중앙에 서면 가슴이 탁 트이는 자연스러움을 더 해주는 아눅하고 잘 정리된 사찰이다.

참고문헌; 한국관광공사 홈사이트

 

003  
안국사지(安國寺址) 석불입상
Anguksaji/Temple Site



대 지 위 치 ; 당진시 정미면 수당리 산102-1
준 공 연 도 ; 고려시대
문화재구분 ; 석불입상-
보물 제100호, 석탑 제101호/1963.1.21.

 안국산(일명 은봉산)에 위치한 폐사지(廢寺地)로 1929년에 승려 임용준이 주지가 되어 다시 세웠다 또 다시 폐사되었다. 이곳에서 150m쯤 떨어진 곳에 높이 5m에 가까운 큰 석불입상이 있다. 머리에는 커다란 사각형의 갓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신체의 비례상 어색하게 큰 편이다. 불상의 몸은 대형화되었는데 인체의 조형성이 감소되어 네모난 기둥같은 느낌을 준다. 또 몸과 어울리지 않게 팔과 손을 붙여 비현실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있으며, 왼손은 배에 붙여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다. 좌우에는 본존불을 모시는 보살상이 있는데, 오른쪽 보살은 허리까지 묻혀 있고 왼쪽 보살은 머리만 파괴되었을 뿐 형식은 본존불과 같다. 고려시대 충청도 지방에서 유행하던 괴체화한 불상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괴산의 미륵리석불입상(보물 제96호)과 함께 주목되는데, 부처상에 면류관을 씌운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얼굴의 표정이 평화스러워 보인다.
 안국사터에 세워져 있는 이 탑은 아래부분인 기단부(基壇部)가 다른 탑들에 비해 간단하고, 2층 이상의 탑몸돌이 없어진 채 지붕돌만 포개져 있어 다소 엉성해 보인다. 탑신(塔身)은 유일하게 1층 몸돌만이 남아있는데, 각 귀퉁이에 기둥을 본떠 새기고 한 면에는 문짝 모양을, 다른 3면에는 여래좌상(如來坐像)을 도드라지게 새겨 놓았다. 각 층의 지붕돌은 크고 무거워 보이며, 처마 밑으로 깊숙히 들어가 4단의 지붕돌 밑면받침을 밖으로 보이고 있다. 전체적으로 균형감을 잃고 있고 조각도 형식적이며, 1층 몸돌이 작아서 마치 기단과 지붕돌 사이에 끼워져 있는 듯 하여 우수한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고려 중기 석탑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탑이다. 근간에 안국사 복원을 위하여, 인근 연못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는 건축물을 축조중이다.

 

004  
충장사(忠壯祠)
Chungjangsa/Shrine



대 지 위 치 ; 당진시 대호지면 도이리 (충장1길 73-52)
준 공 연 도 ; 조선시대
문화재구분 ; 충남 기념물 제52호


 태안반도의 북쪽 부분의 낮은 야산에 국궁장와 함께 있는 이 사당은 조선 중기의 무신 충장공 남이흥(南以興 1540-1627)과 그의 부친 남유(南瑜)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으로, 정면 3칸·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목조건물이다. 남이흥은 조선 인조 때 일어난 ‘이괄의 난’을 평정하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평안도 안주에서 청나라 군대와 싸우다가 성이 함락되자 자결한 무장이고, 남유는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장군과 함께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인물이다. 사당 바로 아래에는 1636년(인조 14)에 나라에서 두 부자(父子)에게 내린 남씨양세충신정려(南氏兩世忠臣旌閭)가 있고, 정려 아래쪽에 재실이 있다.
충장사 경내에는 그밖에도 남이흥과 부인 하동정씨, 부친 남유의 묘(남이흥장군묘일원, 충청남도기념물 제52호)가 있으며,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영정과 곤룡포·호패·고문서 등 남이흥의 유품 500여 점을 보관하는 유물전시관 모충관(慕忠館)과 신도비·유적비 등이 있으며, 매년 9월 충장사 일대에서는 남이흥장군 문화제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