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건축

전통건축 공주-01

참고문헌; 한국관광공사 홈사이트, 공주박물관 홈사이트, 국가문화유산 종합정보사이트

 

011
공산성 광복루(公山城 光復樓)
Gwangbokru, Gongsan Fortress

 

대 지  위 치 ; 공주시 금성동 산1
지 역  지 구 ; 자연보존지구
규          모 ; 정면 3칸 측면 2칸
연   면   적 ;  26.4㎡
구          조 ; 목구조
문화재지정 ; 충남 문화재자료 제50호/1984.5.17.
준 공 년 도 ; 1945년 보수

 공산성의 동쪽 가장 높은 지역에 위치하는 누각이다. 이 곳은 공산성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토성이 겹성으로 위치한 곳 인데, 공산성 두 개의 봉우리 중 서쪽의 봉우리에는 쌍수정이 있고 동쪽의 봉우리에는 광복루가 있으며, 공산성의 가장 고지대에 위치 하여 사방을 조망할 수 있다. 현재 광복루로 불리는 건물은 원래 '해상루'라 하여 성 내의 중군영 의 문루였으나 중군영이 폐쇄되면서 중군영지에 있던 것을 일제 초기에 옮겨 '웅심각(雄心閣)'이라 불렀으며, 1945년에 퇴락한 누각을 공주의 주민이 합심하여 다시 보수하였고, 이듬해 4월에 김 구, 이시영이 이 곳에 이르러 누각에 국권 회복의 뜻을 기념하는 '광복' 이란 이름을 부여 함으로써 누각 명칭이 개칭되었다.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평 면적 24.6㎡의 팔작지붕 초익공 양식으로 창방을 각 칸마다 우미량과 함께 깎아 내어 장식적 효과를 내고 있음이 특이하다. 8각의 고준한 화강암 주초 위에 고주를 올렸으며 지붕은 홑처마로써 네 귀퉁이를 반전시킴으로써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다.

 

012
공산성 금서루/서문지(公山城 錦西樓/西門址)
Geumseoru, Gongsan Fortress/West Gate

대 지  위 치 ; 공주시 금성동 산1
지 역  지 구 ; 자연보존지구
규          모 ; 17m, 3칸
구          조 ; 석구조
준 공 년 도 ; 1975년 보수, 1990년

 서문은 본래 유지만 남아 있었으나 1975년 문루와 함께 새로운 형태로 문루의 복원이 이루어져 있다. 복원된 문루는 공산성 서쪽 성곽선에 연결되게 성선을 연결하면서 성의 입구를 개구식으로 내면서 그 위에 문루를 올린 상태이다. 더불어 본래의 문지는 성내의 출입 시설로 사용되고 있으며 복원된 문루는 외형만 겸비하고 출입시설로 사용되 지는 않는다. 본래 공산성 서문 문지의 복원은 이미 1975년에 성곽에 대한 보수공사를 겸하여 실시한 바 있다. 그러나  보수에서는 양단의 기단만 축석하였을 뿐 누적은 복원되지 않은 채 남겨 놓았었다. 당시 복원된 기단부는 높이 4.4m에 너비 5-6m, 그리고 길이는 각각 17m로 조성하였는데 좌우 양단간의 간격은 7m의 범위였다. 본래 서문지의 형태는 정확한 확인이 어렵다. 문의 형태에 대하여 <여지도 지>에서는 동, 서문은 각각 3칸이란 기록을 남겨 놓고 있다. 서문지의 복원은 1990년에 이르러 본래의 문지에서 약간 남쪽으로 이동하여 3칸 규모의 고주 형태의 문루가 축조되었다. 비록 최근에 새로이 조성된 것이지만 조선시대 성문의 문루 양식을 재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013 
공산성 쌍수정(公山城 雙樹亭) 및 연지(蓮池), 사적비(史跡碑)
Ssangsujeong, Gongsan Fortress

대 지  위 치 ; 공주시 금성동 14-4
지 역  지 구 ; 자연보존지구
규          모 ; 정면 3칸 측면 2칸
구          조 ; 목구조
문화재지정 ; 충남 문화재자료 제49호
지 정 일 자 ; 1984.5.17.
준 공 년 도 ; 1970년 복원

 공산성 진남루 부근의 서쪽 고지대에 위치한 정각으로. 이곳은 인조가 이괄의 난으로 공산성 파천시 머물렀던 장소이며, 이 곳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인조는 환도시 쌍수에 정 3품 대부직을 하사하였는데 그 후 나무는 죽고 구적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유지를 기념하기 위하여 관찰사 이수항이 영조 10년에 쌍수정을 건립한 것으로 전한다. 그 후 정조 11년, 고종 7년, 1947년에 걸쳐 중수되어 오다가 1970년에 건물은 전면 해체되고 새 로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복원된 쌍수정의 건물은 본래의 형상을 정확하게 반영한 것은 아닌 것으로 전하여 지는데, 자료에 의하면 건물은 이층의 누각이며, 누각 주변에 담장 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지금의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 계통의 건물로, 조선 후기 전형적 누각의 형상을 모방하고 있지만, 원형과는 다소 차이가 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인근에는 쌍수정 연지와 사적비(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제35호)가 있다. 이 사적비에는 인조가 이곳에 머물렀던(인조 2년 2월 13일부터 23일) 10일간을 새긴 비문으로, 당시 영의정을 지낸 신 흠(申 欽)이 지은것으로 글씨는 숙종때 영의정을 지낸 남구만(南九萬)이 썼다.

참고문헌; 국가문화유산 종합정보사이트

  

014 
공산성 연지 및 만하루(公山城 蓮池, 挽河樓)
Pond & Manharu, Gongsan Fortress

대 지  위 치 ; 공주시 금성동
지 역  지 구 ; 자연보존지구
규          모 ; 연지깊이 9m
문화재지정 ; 충남기념물 제42호

준 공 년 도 ; 조선 영조시대, 1984년 복원

 공산성 영은사 앞에 있는 연지는 공산성안에 있었던 연못 중 하나로, 단을 둔 석축을 정연하게 쌓았으며 동서양측에 넓은 통로를 둔 것이 특징이다. 깊이는 약 9m이고 연못과 금강사이에는 만하루라는 정자를 세웠다. 공산성의 북쪽 방향으로 금강이 흐르는 강 기슭에 있는 누각으로 그 앞에는 네모난 연못이 잘 꾸며져 있으며, 만하루의 들어가는 입구인 암문이 재미있게 만들어져 있다. 이곳은 공산성에서 가장 멋진 곳으로 손 꼽히는데 금강을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연지는 바닥까지 계단이 있는 것을 보면 단순한 연못이라기보다는 물을 저장하는 기능을 했던 공산성 안에 있었던 연못 중 하나며 단을 둔 석축을 정연하게 쌓았다. 동 서 양측에 넓은 통로를 둔 것이 특징으로 연못과 금강사이의 좁은 둑사이로 영조시대 창건되고, 1984년에 중건한 단출한 모습의 만하루(挽河樓)가 위치한다.
 
참고문헌; 충청남도 공주교육청

 

015 
공산성 영은사(公山城 靈隱寺)
Yeongeunsa/Temple, Gongsan Fortress





대 지  위 치 ; 공주시 금성동
지 역  지 구 ; 자연보존지구
문화재지정 ; 문화재자료 제51호
준 공 년 도 ; 1458년(조선 세조 4년)
 

 공북루에서 산성길을 따라 고개를 하나 넘어 잇는 영은사는 세조 4년(1458년) 창건된 절로 작은 사찰이다. 세조대왕의 사액(賜額)으로 국가에서 창건하였고 광해군 8년 승장(僧將)을 두어 전국의 사찰(寺刹)을 통관(統管)하였다고 공산지에 기록되어 있다. 영은사 대웅전은 문화재자료 제51호로 이 사찰에는 도지정 유형문화재 제160호인 목조 관음보살좌상과  공주 영은사 청동 범종(유형문화재 제161호)이 있다.
 조금은 기이한 모습으로 연지와 마주 한 사찰로 인근 다른 사찰에 비하면 초라해 보이지만, 임진왜란 때에는 승병의 합숙소로 사용되었으며 여기서 훈련된 승병(僧兵)은 영규대사의 인솔 아래 금산 전투에 참여한바 있는 호국불교의 애국충정을 기리는 곳이기도 하다. 사찰이 자리한 이곳은 아늑한 위치에 넓은 뜰과 전면으로 금강이 만하루와 연지를 품고 보이는 조용한 산사의 분위기를 무척 잘 자아내는 곳이다.

참고문헌; 국가문화유산 종합정보사이트, 

 

016 
공산성 진남루(公山城 鎭南樓)
Jinnamru, Gongsan Fortress




대 지  위 치 ; 공주시 금성동
지 역  지 구 ; 자연보존지구
문화재지정 ; 문화재자료 제48호
준 공 년 도 ; 조선 선조시대, 1971년

 영은사에서 언덕을 올라 쌍수교를 지나면, 아래에 보이는 진남루는 공산성의 남문(南門)이며 토성(土城)이었던 공산성을 석성(石城)으로 다시 쌓으면서 지은 누각으로 조선시대에는 삼남(三南)의 관문 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숲으로 둘려싸여져 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기 조차 힘이들고, 하부로 통하는 공간만이 번잡하던 옛 시절을 회상케 한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공산성의 출입구 4개소 중 하나로 '여지도서'에 기록된 6칸의 규모이다. 높은 석축기단으 조성한 후 장대석을 걸친다음 문루를 세웠다. 전면 3칸, 측면 3칸의 초익공 팔작집이다.  

 

017 
금강 배다리터(錦江舊橋 遺跡)
Geum River Old Bridge Site

대 지  위 치 ; 공주시 금성동, 산성동
지 역  지 구 ; 자연보존지구
구          조 ; 목구조

 공주의 옛지명인 웅진(熊津)은 '곰나루'라는 명칭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렇듯 공주는 고대로부터 금강을 건너는 다리로 유명하였다. 근대에 이르러 중부지방의 가장 중요한 수로교통과 내륙교통의 거점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서울과 호남지방을 연결하는 내륙교통의 필요선이 커지면서, 금강에 다리를 설치하여야 하는 필요선이 높아지기 시작하였다. 이에따라 처음에는 금강의 수로교통 기능이 약화되는 겨울에 가설하였다가, 봄이되면 철거하는 임시다리가 가설되었었다. 대략 1910년대 후반에는 자동차의 통행이 가능한 나무다리 '산성교'를 설치하엿다가, 1930년에는 강물의 수량 증감에 대응할 수 있는 배다리인 '금강교'를 건설 하게된다. 이 배다리는 다리자체가 부교로 수위가 올라가면, 떼어내어 강둑으로 끌어가 붙여놓았다가 수위가 내려가면 다시 설치하는 이동식 부교였다. 이 흔적은 1932년 충남도청을 대전으로 옮긴 후, 공주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1933년도에 설치한 '금강철교'가 설치되기 이전에 금강을 남북으로 연결한 금강의 옛다리 흔적으로, 한국전쟁때 철교의 일부가 파괴되었을때 이곳을 이용하여 도강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018
공주 향교(公州 鄕校)
Gongju Hyanggyo/Study Room

대 지 위 치 ; 공주시 교동 211
지 역 지 구 ; 일반주거지역
구          조 ; 목구조
문화재지정 ; 충남 유형문화재 제75호
준 공 년 도 ; 1622년(인조 원년)중건

 

 공주향교는 조선초기 각 군현에 건립함에 따라 이 당시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현재의 위치가 아니라 송산리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화재로 소실된 후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은 1622년 인조때로 조선시대에는 공주에 관찰사가 주재하는 곳이므로 중설위(中設位)로 충청도의 수향교(首鄕校)격인 셈이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1고주 5량집 구조이고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공포는 무출목 2익공식으로 짜고 정면 직칸의 창방과 평방 사이에는 화반을 하나씩 끼워 두었다.

 

019
충청도 포정사(忠淸道 布政司)
Pojeongsa

 

대 지 위 치 ; 공주시 웅진동 332-9
지 역 지 구 ; 일반주거지역

구          조 ; 목구조
문화재지정 ; 충남 유형문화재 제93호

준 공 년 도 ; 1706년(숙종 32년) 중건, 1993년 이건

 충청감영의 동헌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선화당과 같이 정면 8칸, 측면 4칸으로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감영에는 50여 채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선화당과 포정사 및 삼문, 부속건물 1채 만이 남아있다. 원래는 공주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옆에 있었는데, 옛 공주군청 옆으로 옮겨지어 공주 제2감리교회 등으로 사용되어 왔다. 1993년 선화당 앞 지금의 위치에 복원하였다.

 

020 
포정사 삼문(布政司 三門)
Pojeongsa Sammun/Gate

 

대 지 위 치 ; 공주시 웅진동 332-9
지 역 지 구 ; 일반주거지역

구          조 ; 목구조
문화재지정 ; 충남 유형문화재 제93호

준 공 년 도 ; 1706년(숙종 32년) 중건, 1993년 이건

 포정사 문루는 감영의 정문으로 시용되는 2층의 누문이었는데 이곳으로 옮기면서 단층으로 축조되었다. 삼문은 솟을지붕 형태로 공포를 짜지 않은 소박한 민도리집 계통이며, 양 옆칸은 민가로 사용되고 있다. 교동에 있던 것을 1993년 선화당 앞에 복원하였다. 다른 용도로 사용되면서 변형이 있었지만 조선 후기 관아건물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