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건축

전통건축 공주-02

참고문헌; 한국관광공사 홈사이트, 공주박물관 홈사이트, 국가문화유산 종합정보사이트

  

021 
선화당(宣化堂)
Seonhwadang

 

대 지 위 치 ; 공주시 웅진동 332-9
지 역 지 구 ; 일반주거지역

구          조 ; 목구조
문화재지정 ; 충남 유형문화재 제92호

준 공 년 도 ; 1706년(숙종 32년) 중건, 1988년 이건

 충청감영의 관아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충청도 관찰사가 행정업무를 보던 곳으로, 정면 8칸, 측면 4칸으로 협칸의 폭이 다른 칸에 비하여 반 정도이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1706년 감사 이언경이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 건물의 원 위치는 반죽동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인 1937년 박물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칸수를 축소하여 중동의 충남역사박물관 자리로 이건하였다. 그 후 1972년 국립공주박물관을 지면서 헐려버린 것을 1988년 이 장소에 복원하였다. 공포는 익공식으로 형태가 가늘면서도 말각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 특이하다.

 

022 
상신리 당간지주(上莘里 幢竿支柱)
Sangsinri Dangganjiju/Flagpoles Support


대 지  위 치 ; 공주시 반포면 상신리
지 역  지 구 ; 취락지구
문화재지정 ; 유형문화재 제94호
준 공 년 도 ; 고려시대


 계룡산의 동편 입구인 상하신리는 도예촌으로 유명하다. 계룡산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찻길목의 끝자락 부근에 있는 이 당간지주는 마을로 들어서면서 쉽게 눈에 들어온다. 절 앞에 당이라는 기를 다는 깃대를 받친 기둥으로, 당간은 절 앞에 세워 부처나 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표시하고, 사악한 것을 내 쫒는다는 뜻을 가진 당이라는 깃발을 달기위한 깃대를 일컫는데, 예전에는 산 속에 있는 절의 위치를 알리는 표상이기도 하였다. 이 당간지주는 기단의 측면에 연꽃이 새겨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데, 현재 한쪽은 부러졌고 다른 한쪽은 파손되어, 지주만 보존되어 있다. 지주 아래에는 여러개로 여러개로 조립한 기단이 있고, 지주 사이에는 바닥에 당간이 놓였던 자리가  둥굴게 부조되어 있다. 주변에 구룡사(九龍寺)라는 큰 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023 
장군산 영평사(將軍山 永平寺)
Younpyeongsa/Temple, Mt.Janggun




대 지  위 치 ; 공주시 장기면 산학리 441
지 역  지 구 ; 자연보존지구
시          공 ; 도편수 김달원 거사
면          적 ; 50평/외7포, 내11포
준 공 년 도 ; 1990년
 

 행정복합도시인 세종시가 들어설 예정인 연기와 공주의 경계 사이에 있는 이 사찰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 말사로서 6동의 문화재급 전통건물과 3동의 토굴을 갖춘 전통사찰 제78호의 수행도량이다. 비록 장군산은 작지만 풍수적으로는 금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역룡(逆龍)이라 하여 기운이 세찬 명당이라 불린다. 이 장군산(將軍山)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산봉우리 이름이 장군봉인 곳은 많지만 정작 산의 이름이 장군인 산은 없다. 이러한 장군산 입구에 놓인 영평사는 들어오면 편안하다고들 일컫는데, 배치가 산을 등지고 있어 그런 느낌을 받는 듯 하다. 봄에는 매발톱꽃, 할미꽃이요 여름에는 백련이며 가을에는 구절초 꽃 등 들꽃들이 반기는 꽃 동산이기도 하다. 특히 이절은 매년 10월초에 열리는 구절초행사가 유명하며, 재래음식을 제조하여 일반에게 판매하기도 한다.
 일대사인연 즉 중생 생사윤회의 큰 고통을 해결 해 주는일과 모든 성인 가운데 인류의 행복은 물론 사생(四生: 태로 태어나는 것, 알로 태어나는 것, 습기로 태어나는 것, 변화로 태어나는 것), 6범4성(六凡四聖:지옥계 아귀계 축생계 인간계 아수라계 천상계 성문계 연각계 보살계 불계)의 가치를 평등히 보고 일체중생을 다 함께 최고의 행복으로 인도하고자 한 분은 부처님을 뜻과 같다. 따라서 절이라는 곳은 무연의 대자비로 일체중생을 어루만져주는 자비도사가 상주하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도량이므로 영원하고 궁극적인 행복이라는 의미가 담긴 영평사라고 이름 하였다 한다.

 내·외국인이 한국 전통문화의 보고이자 불교문화의 원형이 잘 보존된 전통사찰에서 사찰의 일상과 수행자적 삶을 체험해 보는 사찰 문화체험 프로그램인 템플스테이(Templestay)와 산사콘서트를 여는 등 대중과 많이 어울리는 프로그램으로 알려졌다.

참고문헌; http://www.youngpyungsa.org

 

024 
충현서원(忠賢書院)
Chunghyeonseowon/Shrine


대 지  위 치 ; 공주시 반포면 공암리 381
지 역  지 구 ; 취락지구
규          모 ; 정면 3칸 측면 2칸
구          조 ; 목구조
문화재지정 ; 충남 기념물 제46호
준 공 년 도 ; 1925년 복원

 대전에서 공주로 향하는 32번 국도는 구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터널을 통하지 않고 마티고개를 넘게되어 있었다. 동학사 입구인 박정자를 지나 상하신리를 지나면서  새로운 국도를 따르지 않고 구길로 가면 반포면사무소 앞을 지나게 된다. 이 마을을 지나려 들면서 보이는 장소에 위치한 이곳은 가을에는 단풍이 유난히 눈에 띠는 소담한 공간이다. 서씨 집단부락인 이곳에 계룡산 자락인 문필봉을 배수진으로하여 문앞에 서보면 그 자태가 놀랄정도로 안정적인 모습을 하고있는, 이서원은 1851년(조선 선조 14년) 서 기(徐 起/1523-1591)가  주자 의 영정을 모시고 창건하였다. 임진왜란때 폐허가 되어 1609년(광해군 1년) 다시 세웠고, 1624년(인조 2년) 충현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 처음 제향 인물은 이존오, 이 목, 성제원 이었으나, 1689년(숙종 15년) 김장생, 조 헌, 송준길을, 1713년(숙종 39년)에는 송시열을 추가로 제향하여 충청도를 대표하는 서원으로 발전하였다. 1790년(정조 14년)에 대대적인 보수가 있었고, 1871년(고종 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 되었다가, 1891년(고종 28년)에 유림들이 단을 만들어 제향하다가 1925년 옛터에 다시세워 오늘에 이르게 됐다. 경내에는 충현서원사적비(1712년)와  충현서원사실 우암송선생추향기(1752년) 비석 등이 있다.

 

025 
덕천군 사우(德泉君 祠宇)
Deokcheongun Sau/Shrine


대 지  위 치 ; 공주시 의당면 태산리 101
지 역  지 구 ; 취락지구
규          모 ; 정면 3칸 측면 2칸
용          도 ; 사묘제실
구          조 ; 목구조
소          장 ; 이은명
문화재지정 ; 문화재자료 61호(1984.5.17)
준 공 년 도 ; 1739년 (영조15년)

  이 곳은 조선 2대 왕인 정종의 열번째 아들인 덕천군(1397-1465)를 모신 사당이다. 원래 연기군 남면 방축리에 있던 사당을 건물이 낚아 1739(영조 15년)에 현재의 위치로 고쳐 지었다. 덕천군은 왕자의 신분임에도 직접 들에 나가 농사일을 하였고, 가난한 이웃을 정성껏 도왔는데, 어느 해 여름에 홍수로 금강이 범람하여 수백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자 그가 모두 구제하는 등의 덕을 쌓아, 적덕공(積德公)이라고도 불렀다. 원래 묘소는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 서문 밖에 있던 것을 1974년 8월 9일에 현재 사당이 있는 문중 묘역으로 옮겼고, 신도비(神道碑)는 10대 손인 이광사(李匡師)가 1808년(순조 8년)에 세웠다.
 묘소에 올라 사우를 바라보면 주변 산새가 이 마을을 곱게 싸고 있는 기운을 느낄 수 있는데, 원래 이 마을은 망대산리 왼편 마을로 왕자인 덕천군(德泉君)의 사우(祠宇)가 있는 마을이라 사우말이라 부른다. 이 사우가 옮겨지기 전에는 공산 이씨가 많이 살았으며, 마을도 샛터 또는 신대(新垈)라 불렀으나, 사우가 옮겨오면서 전주 이씨들이 많이 정착하게 되면서 바뀌었다.

 

026 
능성구씨 세거지(陵城具氏 世居地)
Neungseonggussi Segeoji

대 지  위 치 ; 공주시 의당면 중흥리
지 역  지 구 ; 취락지구
구          조 ; 목구조

  고려의 검교상장군(儉校上將軍) 존유(存裕)를 시조로 모시는 능성구씨의 첨추공계(僉樞公系) 세거지로 1620년 전후로 16세인 첨추공 득원(得源)이 호조참판의 벼슬에 이루렀으나 세상이 어지러움을 한탄하고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이곳에 자리하였다. 이후 90세의 천수를 누리며 증정부인 전주이씨와 이곳에 머물면서 청렴한 선비정신과 용맹한 무사의 기질을 후손에게 잘 이어준 집안을 형성하게 되었다. 의당에서 전의로 향하는 도로변에 인접한 이 세거지는 오래된 소나무 숲사이로 도도히고 올바른 기상을 간직한채 자리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