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건축

전통건축 계룡-00

참고문헌; 대전충남의 전통주거건축/이왕기', 국가문화유산 종합정보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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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계 은농재(豆溪 隱農齋)

Dugye Eunnongjae

 
 

대 지 위 치 ; 계룡시 두마면 두계리 96/사계길 79
문화재구분 ; 충남무형문화재 제134호/1990.9.27.
준 공 년 도 ; 조선중기-후기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1548-1631)선생의 고택으로, 은농재는 고택의 사랑채 이름이다. 사계선생은 1548년(명종3년) 대사헌 김계휘의 아들로 태어나, 처음에 구봉 송익필에게서 예학을 배우고, 나중에 율곡 이 이에게서 성리학을 배웠다. 그의 학문은 당대의 누구보다 뛰어나 예학파 유학의 거두가 되었으며, 그의 제자로서 아들인 신독재 김  집을 비롯하여 우암 송시열, 동춘당 송준길, 초려 이유태가 있으며, 그의 학문은 이들에게 전해져 기호학파를 형성하게 된다. 두마면 남쪽에 위치한 천호봉 자락이 북으로 길게 흐르다가 이 마을에 이르러 끝자락을 맺는곳으로, 천호봉 끝자락이 마을 뒤에서 잠깐 솟아 이름 없는 봉을 형성한 것이 은농재의 배산이 된다. 좌우로 구릉이 감싸고 있으며 전면에는 넓지 않은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지형조건에 따라 배치하다보니 가옥은 곤좌간향(坤座艮向)으로 동북향을 하게 되었다. 마을의 북쪽편에는 넓은 들이 있고, 들 가운데로 두계천이 동으로 흐르며, 두계천을 따라 호남선이 지나가고 있다. 현재는 계룡시의 규모가 커짐으로 바로 길 건너에 대규모아파트 단지가 들어서서, 이곳은 단지 주민들의 휴식처로 변하고 있다.
 은농재는 사계선생의 8대손인 두계공의 장자로부터 16대손까지 세거해온 곳이다. 현재 은농재를 비롯하여 안사랑채, 안채, 문간채, 광채, 부속채 등이 하나의 커다란 건축군을 형성하면서 약한 구릉을 배경으로 배치하고 되어 있다. 은농재의 서편 뒤쪽에는 나중에 지은 'ㄱ'자형 별채가 있고, 동편 측면에 연지와 육각정이 자리잡고 있다. 배치구성은 정면 12칸의 문간채를 전면에 두고 문간채 뒤에 커다란 사랑마당을 두었다. 사랑마당 가운데 은농재를 두고 사면에 건물을 배치해 두었다. 은농재 후면에는 'ㄷ'자 평면의 안사랑채와 'ㄱ'자 평면의 안채가 안마당을 두고 좌우로 배치되어 튼 '口'집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안채의 서측 후면에는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이 가옥내에서 유일하게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은농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맞걸이 3량집 구조에 홑처마 우진각지붕으로 만들었다. 가운데 2칸의 큰 방을 두고, 양쪽에 방과 부엌을 하나씩 배치했다. 가운데 방 전면에는 퇴칸으로 하여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큰 방 후면에는 폭이 좁은 쪽마루를 달아 두었다. 막돌로 2중 기단을 만들어 덤벙주초를 놓고 방주를 세웠다. 기단의 전체 높이는 4자정도이고 기단 정면 가운데 부분에 계단을 두었다. 안사랑채는 은농재 후면에 안마당을 가운데 두고 'ㄷ'자 평면으로 배치되어 있다. 은농재 동편으로 연결되어 있는 중문을 두고 중문 좌우에 방을 두었다. 동편 모서리 부분에 큰 방을 두고, 이어서 부엌과 반침, 방을 배치하였다. 안마당 쪽에서 보면 외벌대 기단을 만들고, 덤벙주초 위에 방주를 세웠다. 생활에 편리하도록 평면과 내부구조를 일부 변경하였다.
 안채는 안사랑채와 마당을 사이에 두고 'ㄱ'자 평면을 하고 있다. 평면을 보면 가운데 안대청을 두고 그 좌우에 방을 두었다. 안방은 대청과 툇마루로 연결되는 북편에 두고 안방 끝에 2칸크기의 부엌을 두었다. 부엌의 크기가 다른 곳에 비해 특히 크고, 안사랑채와 같이 생활에 편리하도록 구조 일부를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다. 기단은 세벌대로 만들고 덤벙주초를 놓은 다음 방주를 썼다. 안채의 후면 서측에 사당을 두었다. 정면, 측면이 각각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측면에는 커다란 풍판을 달았다. 흔히 사당 전면에는 퇴칸을 두는데 여기서는 퇴칸을 두지 않았다. 사괴석 외벌대 기단에 원형 초석을 놓고 원주를 세웠다. 문간채는 정면 11칸, 측면 1칸으로 가운데 문간을 두고, 좌우로는 광을 두었다. 문간에는 흔히 만드는 솟을대문을 두지 않고 평대문으로 하였다.
 이 가옥의 외부공간은 크게 3개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은농재의 앞마당을 중심으로 사랑채 공간이다. 문간채와 광채가 주위를 둘러싸고 은농재가 안채와 후면벽을 접하여 가운데 배치되어 마당이 '凹'자 모양이 되었다. 이를 흔히 사랑마당이라 하며 남자들의 공간이기도 하다. 은농재는 규모는 작지만 이 가옥의 사랑채가 된다. 두 번째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사랑채와 안채가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 공간은 주로 여성들의 생활 공간이다. 남성들의 생활공간을 '밖(外)'이라 하면 안채는 여성들의 공간으로 '안(내)'이라 부른다. 사랑채의 크기에 비해 안채의 크기가 훨씬 크다. 이것은 여성들의 생활공간이 많은 것이기도 하지만 이것을 담아야 할 공간이 크게 필요하다는 의미가 된다. 세 번째는 자연과 접해있는 외부공간을 들 수 있다. 주로 담밖에 만들어지는 인위적인 자연공간으로 이 가옥의 동편에 꾸며진 연못과 주위의 조원(造園)을 들 수 있다. 현재 연못과 주위 환경이 변하여 원래의 모습은 아니지만 옛부터 이곳에 연못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가옥은 곤좌간향(坤座艮向)인 동북향을 하고 있다. 지형조건으로 볼 때 배치계획을 하려면 좌향은 동남에서 동북향까지 배치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향을 곤좌간향으로 한 것은 풍수적 측면을 고려한 것으로 보이며, 사랑마당을 크게 만들어 마당 가운데 은농재를 앉혀놓고, 그 주위를 담이 아닌 건물로 에워싸는 배치구조는 특이하다.

참고문헌 ; 충남대전의 전통주거건축/이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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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사(無上寺)

Musangsa-International Zen Center

 
 

대 지 위 치 ; 계룡시 엄사면 향한리 452-13/향적산길 129
준 공 년 도 ; 2000년

 향적산 기슭에 있는 무상사는 외국인들을 위한 사찰로 대웅전, 선원동, 요사채 3 개의 건물이 급한 경사를 이용하여 배치되어있다. 선원동은 2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층은 8 개의 비구스님을 위한 방이 있고, 2층에는 큰 선방이 있으며, 요사채 건물은 3층으로, 1층은 공양간, 2층과 3층은 대중들의 휴식을 위한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