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건축

전통건축 논산-02

참고문헌; 논산관광가이드/1999'

   

021
죽림서원(
竹林書院)
Juklim Seowon
/Shrine


대 지 위 치 ; 논산시 강경읍 황산동 95
규         모 ;
정면 3칸, 측면 2칸
구         조
; 목구조
준 공 년 도 ; 1626년(인조 4년), 1965년 중건

문화재구분 ; 충남 유형문화재 제75호/1984.5.17.

 이 원은 율곡 이 이, 우계 성 혼, 사계 김장생, 정암 조광조, 퇴계 이 황, 우암 송시열 등의 선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후학을 교육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율곡 이 이(1536-1584)는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났다. 그는 이 황과 더불어 조선 성리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원리를 중시한 이 황에 맞대어 경험을 중시했다. 성 혼(1535-1598)은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젊어서부터 이이와 학문을 교류하였으며 많은 벼슬자리에 추대되었으나 거절하다가 이이의 권유로 관직생활을 시작했다. 이 서원은 이 이와 성 혼을 기리기 위해 인조 4년(1626년)에 황산서원이라 하여 세웠다. 후에 김장생을 추가하였으며 현종 6년(1665년)에 임금으로부터 ‘죽림’이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고 조광조, 이 황, 송시열의 위패를 추가했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 1946년에 제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오다가 1965년 사우를 다시 세웠다.
 서원의 건물은 출입구인 홍살문과 외삼문을 통하면 동재, 서재, 내삼문, 사우가 있다. 사우의 오른쪽에는 죽림서원의 중건비와 황산서원의 지비를 세워 놓았다. 사우는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문묘에 모시고 있는 선현들만 모신 서원으로, 음력 3월 15일과 9월 15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022
덕유정(德遊亭)
Deokyujeong

대 지 위 치 ; 논산시 강경읍 동흥리 47
구          조 ; 목구조
문화재구분 ; 논산시지정 향토유적 제 1호/1992.10.28.
준 공 년 도 ; 1828년(순조 28년)

 덕유정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활쏘기인 국궁(國弓)의 수련장으로 조선 고종 2년(1865년)에 사정을 짓고, 덕유정이라 이름하였다. 덕유정의 운영은 덕유계를 조직 운영되었고, 운영자금은 계비로 충당하였다. 순조 28년(1828년)에 계를 설립한 기록이 있으나 그 후 재정상 어려움이 있어, 1846년 양접장사문보가 계를 다시 조직할 것을 발의하여 새로 계를 구성하고 정을 중수하여 춘추로 회유하기로 했다. 덕유정계서에는 '덕유의 의를 살펴본즉 외체가 바른자는 그 뜻을 바르게 하나니 이로써 그 덕을 보는 것이요, 군자의 행실은 반드시 그 사법에 유인하나니 이로써 덕속에 노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은진현 지역내의 국궁에 관심이 많은 인사들이 모여 활쏘기를 하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은진현의 현감이 이곳에서 재판을 하기도 하였다고 전해온다.

 

023
채산리 한옥(採山里 韓屋)
Cheasanri Traditional House

대 지  위 치 ; 논산시 강경읍 채산리 216-1
구          조 ; 목구조
문화재구분 ; 논산시지정 향토유적 제 25호/1996.12.30.
준 공 년 도 ; 조선시대

 이 가옥은 조선말기 전라도 옥구현 관아 건물로 건립 사용되었던 건물로 전해오고 있다. 건물의 최초 건축연대가 미상인 이 건물은 백두산에서 생산된 홍송을 사용하여 건축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 순조 2년(1908년)에 이완용의 숙부인 이호성이 매입,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어 사용하던 것을 1925년 경에 이희창씨가 매입하여 사용해 오고 있다. 조선시대 상류층 사대부 양반 가옥 건축물 형태를 구성하고 있는 이 건물은 안채 중앙 2문을 통문으로 대청마루를 두었고 대청 좌우편에는 방을 두고 방내부 위쪽에는 다락을 설치, 생활에 편리함을 도모할 수 있도록 현대적인 건축기법을 한옥에 접목시킨 보기드문 건축물이다. 안채와 사랑채로 구별되는 중문을 사랑채 측면에 설치하여 안채와 사랑채 구역을 독립시켰고 특히 중문간 측면 사랑채 건물에 방을 두어 안채로 통하는 대문을 관리토록 한 것은 전통한옥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로 조선시대 사대부의 남녀구별 사상을 건축물에 반영시킨 대표적인 본보기라 하겠다.

 

024
모선재(慕先齋)와 의정공 김국광 사당(議政公 金國光 祀堂)
Moseonjae & The Shrine of Uijeonggong Kim Gukgwang

 

대 지 위 치 ;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293,138
규          모 ; 재실/정면 4칸, 측면 2칸, 사당/정면 3칸, 측면 3칸

용          도 ; 사묘재실

구          조 ; 목구조
문화재구분 ; 재실/문화재자료 제307호, 사당/향토유적 제7호(1992.10.28)

준 공 년 도 ; 1483년(성종 13년)


 사계 김장생의 할아버지인 김 호(金 鎬)와 아버지인 김계휘(金繼輝)를 모시는 재실로 건립연대는 1700년대 초반에 후손들이 건립한 것이다. 김계휘(1526-1582년)는 1549년(명종 4년)문과에 급제후 승문원에 등용되었다가, 1566년(명종 21년) 중시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친후 대사헌, 예조판서 등을 지냈다. 재실은 민도리 집으로 정면 중앙의 기둥 3개는 둥근기둥을 사용하였고, 그 나머지는 모두 네모기둥을 사용하였다. 구조는 오른쪽 옆 1칸을 제외하고는 모두 툇간 3칸을 길게 마루를 설치하였고, 맨 오른쪽은 부엌, 중간 2칸은 방, 맨 왼쪽 1칸은 대청이다. 전통적인 한옥 양식의 건물이면서도 재실로서 특이한 내부구조를 갖추고 있어 전통 한옥재실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의정공 김국광 사당은 모선재 바로 뒷편에 이어져 있는 불천위(不遷位)사당으로 전통적인 민속고유의 가묘형식을 갖추고 있다. 전면에는 퇴칸을 둔 사당으로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후벽면에 감실을 두어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매년 2차례 제사를 지낸다. 서석(瑞石) 김국광(1415-1480)은 조선시대 문신으로 1460년(세조 6년) 함경도 경차관으로서 오랑캐를 회유하여 물러나게 하였으며, 1467년(세조 13년) 이시애의 난 때 남이장군과 함께 난을 평정하였다. 1471년(성종 2년) 사은사(謝恩使)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조선시대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 편찬에 공이 많았으며, 좌리공신(佐理功臣) 1등에 광산부원군으로 보해졌다.  

 

025
논산 영모재(論山 永慕齋)
Nonsan Yeongmojae/Shrine

 

 

대 지 위 치 ;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148
규          모 ; 정면 3칸, 측면 2칸
용          도 ; 사묘재실
구          조 ; 목구조
문화재구분 ; 문화재자료 제329호
준 공 년 도 ; 1646년(인조 24년)

 조선 전기의 문신인 김 문(金 問)의 부인 양천(陽川) 허씨(許氏)의 재실로, 입구 마당을 지나면 전면 문간채가 있고, 그 안에 재실인 영모재와 관리사, 아래채 등의 건물이 있으며, 전체 평면은 'ㅁ'자이다. 영모재와 관리사 두 모서리를 연결하는 담장에 있는 중간문으로 관리사에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고, 관리사와 아래 사이에는 담장과 좁은문이 있다. 영모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으로 남쪽의 2칸에는 대청이 있고 북쪽 1칸에는 큰 온돌방이 있다. 주춧돌이나 기둥·대들보 등은 일반 재실보다 굵은 재질을 사용하였다. 대청 뒷면에는 반 칸을 들여서 툇칸으로 만들어 여기에 사분합의 세살문을 달았다. 방의 북쪽 측면 처마 밑에는 날개벽을 내고 툇마루를 깔았다.
허씨부인은 1377년 대사헌(
大司憲) 허 응(許 應)의 딸로 태어나,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김약채(金若采)의 장남 김 문(金 問)에게 출가하였다. 17세에 남편이 죽어 홀몸이 되자, 친가에서 다시 결혼시키고자 하였다. 그러자 부인 허씨인 친가인 개성에서 몰래 혼자 500여리 길을 걸어와 바로 유복자인 사헌부 감찰을 지낸 김철산(金鐵山)을 낳아 기르면서, 평생 절개를 지켰다. 그후 자손이 번성하여 광산김씨 문중에서는 많은 명현(名賢)과 명신(名臣)이 배출되어 가문을 크게 빛냈는데 모두 허씨부인의 음덕이라 하여 그를 숭앙하고 있다. 좌의정을 지낸 김국광, 예학에 밝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신독재(愼獨齋) 김 집(金 集), 서포(西浦) 김만중(金萬中)이 그 후손들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충청도연산조(忠淸道連山條)'에는 허씨부인을 열녀로 기록하였다. 허씨부인은 보통 사후에 내리는 것이 통례이나, 허씨부인은 43세로 특별히 살아있을 때 받았다고도 한다.

 

026
양천 허씨 정려각(陽川 許氏 旌閭閣)
Yangcheon Heossi Jeongryeogak

 

  

대 지 위 치 ;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304
규          모 ; 정면 1칸, 측면 1칸
구          조 ; 목구조
문화재구분 ; 유형문화재 제109호
준 공 년 도 ; 1467년

 이 각은 우암 송시열의 스승인 김장생의 7대 할머니인 허씨의 정려이다. 정려는 나라에 공을 많이 세운 사람이나 효자, 열녀의 집앞에 나라에서 세운 붉은 문으로, 이 정려각은 앞면과 옆면 모두 1칸으로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으로 조선시대 화려하고 특이한 건축양식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팔각형 장초석 위에 기둥을 세운 팔작지붕을 가진 건축으로서 4면에 홍전(紅箭)을 세웠다. 정면 280cm, 측면 250cm의 1칸집이다. 주두(柱頭) 위에 2익공, 외1출목의 공포를 꾸몄는데 우설(牛舌)은 2개의 앙설과 1개의 수설을 만들었으며 미간(楣間)에는 화반을 1개씩 배치하였다. 내부에는 우물천장을 달았는데 중앙의 양변에 지주를 세워 그 윗부분에 '節婦 藝文館檢閱 贈議政府左贊成金問妻 贈 貞敬夫人陽川許氏之閭'라고 새긴 현판을 걸려있으며, 그 앞에는 '양부허씨지려(郞婦許氏之閭)'라고 음서(陰書)되어있는 명정비(明旌碑)가 세워져 있다. 열녀 허씨는 1455년에 사망하여, 조정에 이사실이 알려지자 1467년 정문을 건립하였다.

 

027
숭모재(崇慕齋)
Sungmojae/Shrine

 

대 지 위 치 ;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거정터
규          모 ; 정면 5칸, 측면 2칸
용          도 ; 사묘재실

구          조 ; 목구조

 이 건물은 연산에서 김장생 묘소로 가는 길의 첫머리에 있는 제실로 나즈마한 언덕에 솟을 대문이 정갈하게 서있고, 뒤로 아주 잘 정돈된 모습으로 놓여있다. 조금 아쉬운 점은 근래에 건물을 보수를 하면서 당장과 하부벽의 통기구 부분을 적벽돌 쌓기로 하여 목재부분과 잘 어울리지 않게 보이는 점이다. 광산 김씨 양간공파 파조인 중용(仲龍/1215년생)과 그 아들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정경공(貞景公) 사원(士元), 첨기정사공 사형(士亨)의 단향을 봉행하는 재실이다.

 

028
노성 궐리사(魯城 闕里祠)
Noseong Gwollisa/Shrine



대 지  위 치 ;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301
면          적 ; 1,564㎡
재          료 ; 목구조
분          류 ; 사묘, 제단
문화재지정 ; 충남 기념물 제20호/1978.12.30.
준 공 연 도 ; 조선시대

 공자(孔子)의 영상을 봉안한 영당(影堂)으로 기와로 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궐리는 노나라의 곡부(曲阜)에 공자가 살던 곳인 궐리촌을 본따서 지은 이름이다. 원래 1687년(숙종 13년)에 송시열(宋時烈)이 궐리사를 건립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1716년(숙종 42년)에 권상하(權尙夏), 김만준(金萬俊), 이건명(李健明), 이이명, 김창집(金昌集) 등 제자들이 노성산 아래 궐리촌(闕里村:현 위치의 서쪽)에 궐리사를 건립하고 이듬해에 공자의 영정을 봉안하였으며 1791년(정조 15)에는 송조5현(宋朝五賢)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1805년(순조 5) 관찰사 박윤수(朴崙壽) 등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중건 당시 규모가 축소된 것으로 일명 춘추사(春秋祠)라고도 한다. 궐리사는 강릉, 제천, 오산에도 있었으며 현재는 이곳과 오산에만 남아 있다. 유림에서는 선인들을 높이 받들고 가르침을 지켜나가기 위하여 매년 음력 3월과 9월 초정일(初丁日)에 모여 석전(釋典)을 봉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