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건축

전통건축 연기-01

참고문헌; 한국관광공사 홈사이트, 충남의 건축(충청남도,충남발전 연구원 발핼/1999)

 

011
합호서원(合湖書院)
Haphoseowon/Shrine

 

 

대 지 위 치 ; 세종특별자치시 동면 합강리 105
지 역 지 구 ; 농촌취락지구
주 요 용 도 ; 서원
준 공 년 도 ; 조선 후기
문화재구분 ; 충남유형문화재 제 41호(1984.5.17)

 행정복합도시인 세종시가 개발되는 남쪽 자락에 자리한 이 서원은 1716년(숙종 42년) 안경신, 안경인, 안경정 등이 고려 때의 학자 안 향(安 珦:1243-1306)의 영정을 봉안하고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 향사를 지내다가 고종 때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이 후 후손들이 합호사(合湖祠)를 건립하여 춘추로 향사하다가, 1949년 전국 218개 향교의 동의를 얻어 합호서원을 부설하였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으로 현재 연기유림회 주최로 매년 9월 12일 안향의 제삿날에 제사를 지낸다. 안향은 순흥(順興) 출신으로, 호는 회헌(晦軒), 시호는 문성공(文成公)이다. 1260년(고려 원종 원년) 문과에 급제하여 교서랑(校書郞)이 되고, 1270년 삼별초의 항쟁 때 강화에 억류되었다가 탈출한 뒤 감찰어사(監察御史)가 되었다. 1286년(충렬왕 12) 왕을 따라 원(元)나라에 가서 연경(燕京)에서 처음으로 《주자전서(朱子全書)》를 보고 필사하여 고려로 가지고 들어왔다. 이후 성리학 연구에 몰두, 고려 말기의 유학 진흥에 큰 공적을 남겼다.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순흥 백운동(白雲洞)에 안향의 사묘(祠廟)를 지어서 백운동서원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한국 서원의 시초가 된다.

 

012
문절사(文節祠)-매죽헌사우(梅竹軒祠宇)
Munjeolsa/Shrine

 

대 지 위 치 ;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달전리 333
지 역 지 구 ; 농촌취락지구
주 요 용 도 ; 서원
준 공 년 도 ; 조선 후기
문화재구분 ; 충남문화재자료 제 40호(1984.5.17)

 조선 전기의 학자 성삼문(成三問)의 위해를 모신 사당이다. 동향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외손(外孫) 박 호가 봉사(奉祀)하던 중 1903년 고종(高宗)의 명으로 후손인 성주영이 봉사손이 되어 사당을 건립하였다. 1967년에 박정희 대통령이 문절사라는 현판(懸板)을 친필로 썼으며 정부의 보조로 개축하고 기념비를 세웠다. 성삼문은 우리고장 홍성출신이며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으로 호가 매죽헌(梅竹軒)이며 단종(端宗) 복위를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1456년(세조 2년)에 참살되었다.

 

013
황우산 황룡사(黃牛山 黃龍寺)
Hwangryongsa/Temple-Mt.Hwangwoo

 

 

대 지 위 치 ; 세종특별자치시 동면 명학리 226
지 역 지 구 ; 산림보존지구
주 요 용 도 ; 사찰
준 공 년 도 ; 1935년
문화재구분 ; 충남전통사찰 제 77호(1995.11.8)

 전의역에서 금강편으로 뻗어나가는 도로가에 위치한 사찰로 1935년 현명 황작현 스님이 창건한 태고종 종파의 사찰이다. 유물로는 진허당현명대종사 황룡사 창건 공덕비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3층 석탑 등이 있다.

 

014
금이성(金伊城)
Geumiseong/Fortress

대 지 위 치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송성리, 전의면 양곡리
지 역 지 구 ; 산림보존지구
구         조 ; 퇴메식
준 공 년 도 ; 백제시대
문화재구분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 78호

 북쪽과 서쪽으로는 천안시, 남쪽으로는 공주시, 대전시와 맞닿은 지역이 연기군이다. 평야가 넓은 지역에 위치한 금이성은 성의 둘레 길이 714m로 세칭 '철성'이라 하며 금성으로 표기한 바, 삼국사기에 나오는 금현성이라 함은 이 산성을 이르는 것이다. 전의면 금사리쪽 정북으로 30리를 뻗은 산맥의 최고봉인 금성산(金城山/430m)에 구축되어 북으로 전의. 천안 방면, 남으로 금강일대를 굽어보고 있다. 축조 양식은 전형적인 백제 양식으로 일부 통일신라 초기의 양식이 가미되어 테뫼형으로 축조되었으며,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견고하게 구축되어 세간에 '철옹성' 이라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