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건축

아산시-00

참고문헌; '충남의 건축기행'/엄은화(1999/중도일보 기자), '충남의 건축(충청남도,충남발전 연구원 발핼/1999), 대전충남의 전통주거건축/이왕기'

 

001
공세리 성당
Gongseri Catholic Church


 

설 계 감 리 ; 성일론(成一論/Emile Devies)성 드비즈신부
시         공 ; 중국인 기술자
대 지 위 치 ;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194
지 역 지 구 ; 취락지구, 준도시지역
대 지 면 적 ; 8,988.00㎡
건 축 면 적 ;   462.89㎡         건 폐 율 ; 4.68 %
연   면   적 ;   462.89㎡         용 적 율 ; 4.68 %
규         모 ; 지상 2층
구         조 ; 조적조
최 고 높 이 ; 9.1m
주 요 용 도 ; 종교시설
주 요 외 장 ; 적벽돌 치장쌓기
준 공 연 도 ; 1922년 10월
문화재구분 ; 충남기념물 제 155호/1998.7.

 너른 평야에 사등성이로 솟구친 언덕위로 붉은 벽돌과 흰 장식의 `산뜻한 대비`로 눈에 띄는 영화의 촬영장소로 유명한 이 성당은 아산시에서 39번 국도를 따라 당진으로 가다보면 아산만 방조제에 못미친 곳에 있다. 성당이 위치한 곳은 아산만이 한눈에 보이는 언덕으로 조선시대 아산, 서산, 한산을 비롯해 청주, 옥천 등 40개 고을의 조세를 쌓아두던 공세창고가 있던 곳으로 공세리라 이름 붙여진 이 마을 산 끝자락, 아산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다. 예전에는 성당이 있는 산 아랫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운송, 수송이 편리한 교통 요충지였다 하는데, 지금은 아산만 방조제 공사로 널따란 평야가 펼쳐지고, 일부는 공장지대로 바뀌었다. 
 현재의 성당은 1921년 고딕 건축양식을 모방하여 성 드비즈 신부가 중국인 건축기술자와 함께 재건립한 것으로 사제관도 당시에 함께 건축되었다. 원래 적벽돌 조적조의 3랑식 장방형 건물로 신랑과 측랑이 목조기둥에 의해 구획되었으나, 익랑부분을 증축하면서 목조기둥이 제거되었다. 신자석을 확충하기 위한 조치였으나 점차 내부 공간의 분절이라는 의미가 약해져, 성당 건축의 이념적 성격이 쇠퇴된 반면, 제대 좌우에 넓은 신자석을 설정함으로써 제대를 둘러싸는 집중적인 미사형태가 가능하게 되었다. 주출입구 상부에는 돌출한 짧은 맞배지붕식의 장식이 있고, 창 상부와 박공부분 및 첨탑 아래에는 원형 장식쌓기를 하였다. 정면에는 4개의 플랫 버트레스가 놓여져 있는데 그 끝마다 피너클(pinnacle)을 두어, 전체적으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한일합방과 한국동람을 겪으면서 수난과 핍박의 역사현장에 있던 건물. 처음에 공세리 성당은 기와집으로 시작해 이미 지난 1995년 본당 설립 100년사를 기록했다. 1897년 현 성당터를 구입했고 교구청과 교우들의 도움으로 20여년이 지나 고딕식 외형을 띤 지금의 성당이 출현했다. 성당부지는 마을 사람들이 옛날부터 귀신이 나오는 곳으로 믿었던 두려움의 장소. 교우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드비즈 성신부는 성 베네딕도 성인 패를 주춧돌 밑에 놓고 3일 기도를 드린 후 공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프랑스 건축가의 아들이었던 드비즈 성신부는 성당을 설계, 감독하고 중국인 벽돌공과 기술자 20여명을 데리고 공사를 시작했다. 1895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에밀 드비즈(成一論)신부는 이곳에 부임하여 400년이 지난 세곡창고터를 헐고, 1922년 10월 8일 봉헌함으로써 내포지방 신앙의 못자리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는 이 지역의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자신이 직접 서양의술과 한방기법을 활용하여 개발하였으며, '이명래고약'으로 유명한 이명래(요한)에게 그 비법을 전수시켰다. 그래서 이 고약은 본시 에밀 드비즈 신부의 한국 이름을 따서 '성일론 고약'이라 불리었다.
 건축하면 지붕에 대들보를 얹는 일부터 했던 우리네 방식과는 달리 사방에 벽만 쌓는 것도 당시 희한한 구경거리였다. 이로써 이 성당은 대전교구 최초로 서양식(프랑스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 됐다. 이후 1936년 지어진 공주 중동성당 등 다른 성당들의 건축적 모델이 돼왔다. 그러나 준공된 고딕성당이 완성된 형태의 고딕은 아니었다. 당시 지방은 과도기적인 한옥성당(부여 금사리 성당/1906)이 전개된 것에 반해 대도시와 개항지는 프랑스신부 주도에 의해 중세양식의 벽돌조 성당이 일반화됐다. 이때는 서양에서는 양식적 건축이 지배하던 시기로 교회건축의 경우 고딕 양식을 추구했다. 조금 더 신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마을과 떨어진 언덕 위의 높은 첨탑이 인상적인 고딕양식은 아치, 볼트천장, 버팀벽, 종탑 등 평면과 공간구성이 특징적이다.
 원래 고딕양식은 석조건축의 양식이었으나 국내에서는 벽돌조를 이용해 유사고딕의 형태를 나타냈다. 이를 두고 ‘고딕양식의 외적 재현'에 머물렀다는 지적이 있지만 ‘한국전통 감각에 부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벽돌 재료에서 찾았다'는 평가도 있다.다만 벽돌조로 표현할 수 있는 미세한 부분과 시공 기술상의 문제가 불안정한 시대 상황만큼 완벽하게 이뤄지지 못한 점 등은 구조적 한계로 머무는 부분이다. 현 공세리 성당 평면은 ‘T'자형으로 되어 있다. 전면에 제대를 두고, 회랑을 구분하며 나열된 기둥에 의해 3랑식으로 구획된다. 내부 천장은 반원형 베렐 볼트로 각 베이마다 회색 벽돌처럼 표현한 목재 리브(Rib)가 있다. 측랑 부분은 평천장으로 마감, 목재판을 그대로 노출시키며 고딕성당이 갖는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종교적 상징물인 종탑은 성당이 단층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원거리서도 눈에 잘 띄도록 화려한 장식을 한 채 4층 높이까지 솟아있다. 붉은 벽돌과 하얀색 디테일의 대비가 주변 숲과 어울려 산뜻한 대비를 이룬다. 또 성당과 사제관 사이의 널따란 마당은 한폭의 그림같은 같은 풍경이다. 인기드라마와 영화 ‘불새', ‘고스트맘마', ‘모래시계' 팀이 이곳을 다녀가는 등 화면에서 옛 성당이 배경으로 나오면 거의가 공세리 성당의 모습이다. 그러나 공세리 성당의 지난 100여년간의 역사는 그리 순탄치 않았다. 순교자의 피가 얼룩지고 뼈가 묻혔는데 한국전쟁은 본당 설립이래 가장 큰 박해로 기록된다. 바다와 인접 해 외부 문물 유입이 용이했던 공세리는 복음이 일찍 전파됐던 곳이다.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가 본당 설립이전 공세리에서 이뤄졌고 한국전쟁 때는 북한군에게 점령 당하여 공회당으로 사용되면서, 주임신부와 신자들이 사제관 1층에 감금됐다가 트럭에 실려 서울과 평양, 압록강으로 끌려 다니다가 결국 순교했다. 성당은 공산군의 정치보위부가  되어 귀중한 성물과 서적이 불속에 던져졌고, 제대는 뜯겨져 강연대로 사용됐다. 성당이 없어질 뻔한 사건도 있었다. 교우 등 외부 꾐에 빠진 신자가 성당 안에 신자들을 모아놓고 수류탄을 던져 죽이려 하다가 그 안에 자신의 어머니가 있음을 알고 포기했다고 한다.
 고단한 풍상을 겪은 이 성당은 벽돌의 내구성 한계로 균열이 생기는 등 노후한 모습임에도 단아한 자태를 잃지 않고 있다. 성당을 잘 보존하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계속돼 외벽에 페인트칠을 하고 제대부분을 증축했다. 다만 시간의 역사를 전달하는데 페인트칠이 방해요소로 작용하고 있고, 원형을 살리지 못한 증축이 초기 성당 이미지와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신앙에 한 목숨을 아끼지 않은 순교자와 성당을 지키기 위해 피 흘리며 사라져간 이들의 마음을 다 설명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기에 400여 쪽 분량의 100년사 책자 안에도 다 담지 못한 공세리 성당의 뒷 얘기들은 더욱 그렇다. 
충남지방에 세워진 최초의 양식 성당건축물로써 그 건축·역사적 가치를 찾을 수 있다. 1970년에는 북측의 제대가 있는 곳을 헐고, 150여 평으로 증축하였으며, 1995년 7월 제거되었던 성당내부의 기둥을 복원하여, 2000년 초 원형에 가깝게 다시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嚴殷和기자/1999.10.4.중도일보

  

002
온양 민속박물관
Onyang Folk Museum

 

설 계 감 리 ; 건축사사무소 아키반 김석철
시         공 ; (주)대한전설건설
대 지 위 치 ; 아산시 온양읍 권곡리 403-1
지 역 지 구 ; 보전녹지지역 근린공원시설지구
대 지 면 적 ;  69,300.0㎡
건 축 면 적 ;   3,159.8㎡         건 폐 율 ;  4.56 %
연   면   적 ;   5,766.6㎡         용 적 율 ;  7.35 %
규         모 ; 지하 1층 지상 2층 옥탑층 3개소
구         조 ; 철근콘크리트 라멘조
주 요 용 도 ; 전시시설
주 요 외 장 ; 적벽돌 치장쌓기
준 공 연 도 ; 1978년

 주로 아동도서 발간으로 알려진 (주)계몽사가 기업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설립한 개인 소유의 민속박물관으로, 현충사의 입구로 향하는 국도 변에 위치한 건물로 형태가 범상치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1978년 개관한 이 민속박물관에는 한국인의 고유한 생활과 문화 속에 형성된 민속자료를 종합적으로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모두 3개 전시실로 구성돼 제 1전시실은 한국인의 일생, 식생활, 주생활, 의생활을, 제 2전시실은 농업, 길쌈, 대장간 등을, 제 3전시실은 민속공예, 민간신앙과 오락, 학술과 제도 등을 살펴 살펴볼 수 있다.
 외장은 적벽돌 치장쌓기로 처리돼 20여년이 지난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튼튼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지붕은 흰색 평슬래브로 처리해 날렵하고 경쾌한 상부를 연출하고 있는등 전체적으로 입체적인 입면을 구성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발산하고 있다.내부는 전체가 전시공간으로 동선 처리에 주의를 기울였다. 내부로 들어서면 화살표 방향을 따라 왼쪽 전시장에 들어선다. 우리네 민속과 관련한 자료 2만여점을 호기심 있게 살피다 보면 무리없이 출발했던 원점으로 돌아올 수 있는 흐름으로, 수백여명은 족히 됨 직한 관람객이 동시에 들어가도 엉킴없이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다. 전시장 사이사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가 설치돼있고, 자연채광을 유입하는 천창이 복잡한 실내에 여유를 제공한다. 쉬엄쉬엄 걷다보면 어느새 1,2층을 돌아 현관 앞으로 오게 되는 진행은 내방객에게 전시물 다음으로 흥미를 자아 내는 부분이다.
 
이 박물관은 장방형과 정방형의 두 동의 건물이 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나 진입로 상에서는 전면의 장방형 매스만이 인식된다. 전면 동은 중앙의 입구홀을 중심으로 2개 층에 걸쳐 순회로 형식의 전시실이 구성되어 있는 반면, 후면 동은 중앙이 넓게 개방된 중정형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관람동선은 전면 동에서 후면 동을 거쳐 다시 전면 동으로 되돌아오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시공간의 일방향성과 단조로움은 연결통로의 레벨 변화와 중정의 공간적 변화로 완화되고 있다. 건물의 외관은 전시대 부분을 밖으로 돌출시켜 형성된 외벽의 요철로 입방체의 볼륨을 분절하고 적색과 흑색의 전돌로 각 볼륨을 대비시키고 있다. 외관의 육중하고 강렬한 형태와 색상에 비해 건물 상부의 외곽을 돌아가며 형성된 지붕 처마의 수평선이 건물 몸체의 다양한 모습을 묶어주고 있으며, 타워형 매스의 돌출과 중앙 평지붕 일부의 경사 처리 등을 통해 스카이라인에 변화를 주고 있다. 2001년 경영란으로 잠시 문을 닫았다가, 국민들의 성원으로 다시 개관하는 고난를 거듭하고 있다.

참고문헌 ; 嚴殷和기자/1999.11.15.중도일보, 충남의 건축(충청남도, 충남발전연구원/1999), A Guide to the Chungnam Tourism

   

003
온양 민속박물관-생활예절관
Onyang Folk Museum-Tradition Center

설 계 감 리 ; 이타미 준(伊丹潤/Jun Itami)  
시         공 ; 계몽사
대 지 위 치 ; 아산시 온양읍 권곡리 403-1
지 역 지 구 ; 보전녹지지역 근린공원시설지구
대 지 면 적 ;  69,300.0㎡
건 축 면 적 ;    1,875.9㎡         건 폐 율 ;  2.71 %
연   면   적 ;    1,875.9㎡         용 적 율 ;  2.71 %
면 적 구 분 ; 민속생활관; 1,121.6㎡ 전시실; 754.3㎡
규         모 ; 지상 1층
구         조 ; 철근콘크리트조+조적조
지 붕 구 조 ; 목조 트러스
주 요 용 도 ; 전시실, 민속생활관
주 요 외 장 ; 흙벽돌 치장쌓기
준 공 연 도 ; 1982년

 한류붐이 일기 이전부터 일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재일동포 3세 건축가인 '이타미 준(1937-)'은 화가 '이우환'과 함께 작품이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저명 예술가이다. 평소에 한국민화를 많이 수집하면서 전시에 관심을 갖고 있다가, 이러한 모국에 대한 감성을 모아서 단 한번에 표출한 느낌이 드는 특이한 건축물이다. 중앙상부에 솟아 오른 지붕의 형태 때문에 건축계에서 논란이 많이 되었던 작품으로 건축가 개인 의식이 건축물로 되 비춰질 때 겪어야 하는 고통이기도 하다.  
 시내에 위치한 충무교를 건너면 오른편에 자리잡은 온양 민속박물관은 어린 시절에 한번 쯤은 관광버스를 타고 수학여행을 다녀오고 했던 곳. 현충사를 방문한 후 민속박물관에 들러서는 선조들의 생활을 엿보는 시간을 가졌던 추억의 장소이다. 출판사 계몽사로 유명한 계몽문화재단이 전통문화를 보존, 계승하고 민족성을 유지하기 위해 1978년 개관한 이래 한국인의 각종 자료를 모은 '한국인의 일생', 전국 열 한군데 탈바가지를 모은 '민간 신앙과 오락' 등 2만점이 넘는 자료를 전시 중인 사료관. 현충사 방문을 위해 먼 길을 달려온 관광객들에게 우리의 역사와 풍습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1982년 온양 민속박물관은 사료물 전시기능 외에 다른 장르물의 전시를 목적으로 관내에 생활문화관을 건립했다. 당초 민화 미술관으로 계획, 전시기능에 적합한 건축물을 태동시켰다. 그러나 이 건물은 탄생과 동시에 빛을 보지 못하고 수많은 논란 속에 서서히 존재 의미를 잃게된다.  반일이라는 시대 상황아래서 태어난 생활문화관은 존재 가치를 알릴 겨를도 없이 쉬쉬하며 지내왔다. 그러다 보니 건축학적 평가는 물론 자체 건물의 활용도에서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퇴색한 모습으로 이 건물은 논란을 빚었던 만큼 형태상에 있어서도 독특한 입면을 지닌 점이 간과돼 왔다. 직사각형 평면에 전통건축의 친숙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테두리를 기와로 처리했다. 실내로 채광을 유입하고 입면을 강조하기 위해 높은 천장에 띠를 두르고 있는 원통형 지붕을 세웠다. 이로 인해 도로 변에서 보면 거북선이 떠 있는 듯하고, 박물관 쪽에서 보면 성스러운 신전같은 분위기를 발산하고 있다.
 내부 공간구성은 장방형 네이브(nave)를 중심으로 네 개 면에서 회랑과 같은 낮은 아일(aisle)이 둘러싼다. 네이브의 중심으로 전후,좌우가 대칭적인 공간 구성을 하고 있고, 진입부 양측은 벽돌로 마감된 원통형 요소가 배열돼 내부 조형감과 볼륨감을 강조했다. 특히 흙벽돌의 타원형 매스로 높이 솟아서 주변에는 랜드마크적 구실을 하고 내부에는 장대한 공간감을 부여한다.높은 천장 측벽에서 내려오는 자연채광은 어둑한 실내에서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하고 있다.
 결국 건물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데는 반일 감정이 우세했던 80년대초라는 시대적 배경 아래 설계자의 국적이 일본이었기 때문에 생활문화관은 여러가지 오해와 혐의 속에 갇혀 버렸다. 먼저 생활문화관을 1982년 신축건물로 여기는 점이다. 온양 민속박물관 측에 따르면 종전에 있던 건물에 설계자가 재축을 맡았던 것이라 한다. 일본인이, 일본식 건물의 형태적 요소를 반영함으로써 갑작스레 관심을 집중시켰던 것이다. 이후 건축관련 자료에는 92년 지어진 건물로 소개되고 있다. 이 건물은 재일건축가가 설계를 맡았다. 형태도 일본 메꼬모자 형태의 지붕처리로 일본풍이 진하게 배어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타미 준은 그러나 일본에서 활동 중인 교포 3세이다. 일본에서 '조선의 건축'이라는 책자를 발행했고, 한국의 민화에 많은 관심을 같고 있던 중 민속박물관과 인연을 맺게 됐고, 건물 리노베이션을 맡게 된다. 이 건물의 형태에 대해서도 지붕은 현충사의 거북선과 연계시켜 거북이에서 착안했고, 흙벽돌과 기와를 사용해 한국적인 건물이 되도록 했다는 설명한다. 그럼에도 이 건물이 일본 풍의 혐의를 벗을 수 없는 점이 있다. 우리네 눈으로 보기에는 천상 일본의 산간지방에서 볼 수 있는 건물의 구성요소, 타원형 메스에 목재를 사용한 내부 지붕틀과 메꼬모자 형상, 높은 천장고 등을 지닌 것이다.
 성환 방면으로 나 있는 온양 민속박물관 옆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길가 담장을 낀 채 특이한 형태로 서있는 생활문화관을 박물관으로 착각한다. 나무 숲에 싸인 채 언덕 위에 있는 박물관이 외부에서 눈에 띄지 않는 반면, 이 건물은 행인들의 모습을 담장 너머로 쳐다보고 있는데서 기인한 것이다. 박물관을 아주 오래전 다녀오거나 방문하지 않은 이들은 기와지붕에 모자를 쓰고 있는 이 건물을 박물관으로 여기고 있다. 활용도에 있어서는 민화미술관으로 개관했다가 운영상 어려움으로 지금은 전통혼례, 놀이마당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어울리지 않게 매달린 샹드리에, 화려한 레이스 커튼등 결혼식장에 걸맞게 급조된 인테리어를 하고 있다. 눈에 띄는 외관임에도 관리상 허술로 내방객들에게 아무런 감흥도 전해주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행사가 없는 날은 문을 닫고 있어 재정적 빈곤상태에 처해있는 국내 박물관의 현실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참고문헌 ;
嚴殷和기자/1999.11.15.중도일보

  

004
신도리코 아산공장
Sindo Ricoh Asan Factory

 

설 계 감 리 ; 건축사사무소 기오헌 민현식
시         공 ; (주)두산건설
대 지 위 치 ; 아산시 남동 1
지 역 지 구 ; 공업지역
대 지 면 적 ;  147,232.00㎡
건 축 면 적 ;     2,222.40㎡         건 폐 율 ; 17.04 %
연   면   적 ;     7,787.38㎡         용 적 율 ; 30.57 %
규         모 ; 지하 1층 지상 4층
구         조 ; 철근콘크리트 라멘조
최 고 높 이 ; 33.30m
주 요 용 도 ; 업무시설
주 요 외 장 ; 석재 뿜칠, 두께 24mm 복층유리
내 부 마 감 ; 비닐 쉬트
주 차 대 수 ; 192대
수 상 경 력 ; 1998년 대한민국 50년 걸작건축물 20선
                   1997년 한국건축가협회상
준 공 연 도 ; 1996년

 비움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여지의 제공으로 욕심을 덜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건축가에 의해 꿰 맞춰 진 작품이기보다는 주변과 함께 다른 얘기로 나눌 수 있는 기회의 제공. 현대사회가 복잡해 질수록 사람들은 한가로움과 더불어보다 쾌적한 공간을 희구한다. 또 상식을 뛰어넘은 예상외의 만남 속에서 기쁨을 발견한다.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이 시대의 건축을 얘기할 때 표본처럼 내세워지는 건축물이 충남 아산시 남동에 있다. 신도리코 아산공장. 신도리코가 80년대 아산에 넓은 부지를 확보하고 공장을 가동한 이래 96년 화제의 본관동을 신축하면서 이곳은 건축계 관심을 모아왔다.아산에 넓게 펼쳐진 탕정평야를 끼고 현충사와 마주보고 있는 위치에 있는 신도리코 아산공장은 우선 공장이라는 건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 제공한다.
 OA기기를 생산하는 신도리코공장은 사무공간과 직원들의 지원시설로 구성된 공간이다. 지하1층, 지상 4층으로 저층부에는 식당, 카페, 극장, 회의실 등의 복지공간이 집중적으로 배치돼 있다. 3,4층은 사무공간이 위치해 있어 모든 직원들이 이 건물을 거쳐 각 공간으로 흩어지고, 식사 시간이면 다시 모여 일체감을 확인하는 장소이다. 이 건물의 출발은 10M 내외의 높은 차이를 지닌 채 남북으로 좁고 길게 놓여져 있는 급경사 자투리 땅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악조건을 따라 전후로 3개층의 차이를 갖는 건물은 고저차를 자연스레 해결하며 대지의 조건에 순응했다는 호평을 받는다. 동서 방향의 고저차를 이용해 주,부 출입구를 서로 다른 높이에 위치시켜 흥미로운 단면을 구성한 것. 이곳의 큰 특징은 비어있음이다. 공간적 구성을 통해 건물의 중앙을 비우고 진입 공간도 개방적으로 오픈했다. 무채색 벽에 무채색 바닥을 하고 남북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건물의 전면은 커다란 창으로 마무리돼 있다.가능한 모든 것은 원기둥과 커튼월로 절제되고 삭제된 것이다.
 현관부문은 층과 무관한 2.5m기둥 3개가 버티고 있다. 전면 전체를 감싸고 있는 벽이 이곳에서는 오픈된 채 공장 내 어디든 원하는 방향으로 접어들 수 있다. 천장은  1.8m 간격의 콘크리트 워풀로 짜여져 있고 이중 몇 개는 천창으로 구성돼 다차원적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공장직원들이 출근하면 이 홀을 거쳐 옷을 갈아 입은 뒤 건물 앞뒤에 위치해 있는 일터로 발길을 돌리고, 식사시간은 다시 돌아와 식사를 마친 후 건물과 외부 곳곳에 마련된 쉼터에서 휴식을 취한다. 입구홀을 지나 로비로 들어서면 또 하나의 마당이 펼쳐진다. 기능과 장식이 건축적 요소와 오브제 요소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공간은 오가는 사람이 없을 때면 비어있는 마당. 각층별, 건물의 이쪽 저쪽을 오고 가며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중정이다. 이곳은 진입구에서 윗층으로 향하는 공간을 가로지르는 계단이 9M나 되는 실내폭포와 흐름을 같이한다. 건물 뒤편부터 시작되는 폭포는 진입방향과 마주 보게끔 물이 떨어짐으로써 산을 오르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전체적으로 로비 내부는 삼각형 형태로 밝고 어두운 색의 대비를 가진 일정한 모듈을 지니며 전면 프레임 유리벽면 구성으로 어울려 건축적 재미를 발견할수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눈높이를 달리한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카페테리아 너머로 1층식당 공간이 한눈에 들어와 1,2층 구분없이 일체감이 조성되고, 로비를 바라보면 바닥, 천장, 벽의 디자인 요소가 동일감을 이룬다. 시야는 또 밖으로 확장돼 전면의 넓은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3, 4층 사무 공간도 최대한 개방성을 부여해 작업터에서 언제든 전원풍경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며 이같은 배려는 옥상 정원으로 이어져 철저히 직원을 위한 공간으로 구성됐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내부의 비움과 개방성 확보를 위해 도입한 외부 커튼월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철골프레임을 설치해 입체감을 부여하고 있다. 실내로 투영되는 자연은 단순히 훌륭한 풍경에 그치지 않고 실내의 외부노출과 강렬한 햇빛을 유입시키기 마련이다. 건축가는 격자라는 틀을 이용해 햇빛을 차단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그림자를 실내 풍경화한다.  단순한 전면부는 특히 곳곳에 설치된 철골 프레임으로 수평, 수직의 관계를 유지하며 막힘과 열림의 묘미를 제공한다. 기존건물과의 연계 또한 간과하지 않은 이 건물은 가벽 설치로 뒷 건물이 보이지 않는 전면성을 부각시키는 등 피곤에 지친 일터 사람들에게 위로와 활력을 주고 있다. 인간을 위해 지어지는 건축이 얼마만큼 사람들에게 소박한 자태로 동반자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비어 있음"은 .... 고요함, 명료함, 투명성을 내재한다. 스스로 비어있고자 하지만 결국은 보다 많은 것을 채울 준비가 돼 있는 포용력의 발현이다. 간결한 건축적 디테일 안에 자연을 투영하고 인간을 생각하는 고요함이 담겨 있어 어느 건축보다 얘깃거리가 풍부하다. 굳이 꾸미려 하지 않았으나 스스로 아름다운 신도리코는 그렇게 친자연적이며 인간을 위한 미학의 결정체란 찬사가 가득하다.

참고문헌 ; 嚴殷和기자/1999.11.29.중도일보

 

005
신도리코 기숙사 Ⅱ/백두관
Sindo Ricoh Domitory Ⅱ/Backdugwan

설 계 감 리 ; 건축사사무소 기오헌 민현식
시         공 ; (주)홍성건영
대 지 위 치 ; 아산시 배방면 공수리 148-4, 5
지 역 지 구 ; 일반주거지역
대 지 면 적 ;    3,066.00㎡
건 축 면 적 ;      820.92㎡          건 폐 율 ; 26 %
연   면   적 ;    2,661.08㎡          용 적 율 ; 86 %
규         모 ; 지상 4층
구         조 ; 철근콘크리트 라멘조
최 고 높 이 ; 18.6m
주 요 용 도 ; 기숙사
주 요 외 장 ; 드라이비트, 두께 18mm 파스텔복층유리
내 부 마 감 ; 비닐 타일
주 차 대 수 ; 9대
구 조 설 계 ; 서울구조
설 비 설 계 ; (주)한일 MEC
전 기 설 계 ; (주)문유현전기설계사무소
준 공 연 도 ; 1997년

 일상적인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한 작품을 구성하여 기숙인에게는 즐거움을 그리고 보는 방문객에게는 호기심을 듬뻑 주고 있는데, 수도권을 탈피하여 아산에 공장을 세운 초기에는 일반적인 공장의 배치형태와 모습으로 산모퉁이를 돌아서면서 도열하여 있다. 하지만 직원들의 복지를 위하여 세워 진 이 기숙사는 우선 진입하면서부터 흥미를 자아낸다.
 벌판에 놓인 이 건물은 외부에서 쉽게 모여지고, 내부에서도 밖이 너무 잘 보이는 장단점을 함께 지니고 있다. 기숙사의 방 바닥선까지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서 밝은 방을 유지하지만, 습관이 되지 않은 입주자는 부담스러워 가리기 까지 하였다.
이 백두관은 같은 건축가에 의해 설계된 한라관에 이은 기숙사 연작의 성격을 지닌다. 두 건물이 모두 건물이 들어서는 땅과 여기에 살 사람들로부터 설계의 실마리를 풀고 있으나 한라관의 관념적이고 금욕적인 이미지에 비해 백두관은 구축적이고 적극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주변이 곧 택지로 개발될 예정이었던 까닭에 유동적인 주변의 개발에 방해받지 않는 내부지향적인 마당을 중심으로 나란한 2개 동의 건물을 남향 배치하고 있다. 배치 및 공간, 활동의 구심적 역할을 하는 중앙마당은 서측에 공연 및 집회, 휴게 등 다용도의 계단형 테라스를 조성하고 양측 건물의 상부를 좌우의 2곳에서 통로로 연결하여 적절한 개방감과 위요감을 함께 도모하고 있다. 내부는 한라관에 비해 폭이 넓은 개실을 편복도를 따라 배치하고 연결통로와 도서실, 운동실, 테라스 마당을 통해 각 층에서 전 후면 건물을 연결하고 있다. 나란한 두 동의 건물은 식당 등의 공용실이 있는 북측의 후면 건물이 약간 길고 1층의 층고 또한 반층 높은 까닭에 서로 간에 미묘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개실의 배치와 벽체의 강조, 격자형 입면 구성과 장식 및 색채의 절제 등이 전작의 맥락을 유지하고 있다면 옥외 노출계단과 연결통로, 중앙마당의 마감 처리와 공간 구성 등에서 보다 풍요롭고 표현적인 느낌을 든다.

참고문헌; 충남의 건축(충청남도, 충남발전연구원/1999)

  

006
신도리코 기숙사 I /한라관
Sindo Ricoh Domitory I /Hallagwan

설 계 감 리 ; 건축사사무소 기오헌 민현식
시         공 ; (주)삼환기업
대 지 위 치 ; 아산시 남동 72-6
지 역 지 구 ; 취락지역
대 지 면 적 ;    1,507.00㎡
건 축 면 적 ;       585.33㎡          건 폐 율 ;   38.84 %
연   면   적 ;    2,303.34㎡           용 적 율 ; 132.68 %
규         모 ; 지하 1층 지상 4층
구         조 ; 철근콘크리트 라멘조
주 요 용 도 ; 기숙사
주 요 외 장 ; 석재 뿜칠
준 공 연 도 ; 1996년

 국도변의 논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이 기숙사는 대지의 고유한 상황과 인접한 공장을 3교대로 출 퇴근하는 거주자들의 특수한 생활 패턴에서 디자인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즉 계절에 따라 변하는 들판의 풍경과 일터를 오가며 특별한 시간대가 만드는 상황에서 사용자가 만나게 되는 이 건물은 일차적 기능의 충족만을 위한 건물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자기인식을 위한 감각의 틀로서도 의도되고 있다. 대지의 북측에 인접해 일자형으로  배치된 건물은 북쪽 진입로에서 형태적 정면성을 지니는 반면, 내부의 모든 실은 일조와 경관이 양호한 남쪽으로 열려 있는 기능적 정면성을 지닌다. 내부는 남향으로 면한 좁고 긴 평면의 개실을 편복도로 길게 이어주는 단순한 구성을 취하고 있으나 개실 전면의 격자형 간막이벽과 단부의 벽체 돌출, 측면과 상부의 유리 처리로 벽체의 독립성을 강조한 복도 외벽, 출입구 북측의 경계벽 등을 통해 내 외부적인 켜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겹의 켜는 상층부로 올라가며 줄어드는 건물의 폭과 함께 공간 및 볼륨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참고문헌; 충남의 건축(충청남도, 충남발전연구원/1999)

  

007
호서대학교 아산캠퍼스 예술대학 증축동
Art College Extension Building of Hoseo University at Asan Campus

설 계 감 리 ; 정재헌  
대 지 위 치 ; 아산시 배방면 세출리 산 29-1
지 역 지 구 ; 도시계획구역
대 지 면 적 ;  325,321.00㎡
건 축 면 적 ;     3,975.00㎡         건 폐 율 ;   7.43 %
연   면   적 ;    13,887.45㎡         용 적 율 ; 24.24 %
규         모 ; 지상 4층
구         조 ; 철근콘크리트조
주 요 용 도 ; 교육시설
주 요 외 장 ; 외벽단열시스템
준 공 연 도 ; 1992년

 기존의 예술대학 건물에 증축된 연극영화학과 전용의 건물로서, 경사지형에 직교하여 선형으로 앉혀져 있는 기존 건물의 흐름을 따라 길게 배치된 증축동의 하부는 산자락에 묻고 있다. 기존 건물과의 조화는 매스 구성과 수평선이 강조된 회색의 타일 마감 외벽에서 동일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으나 형태상으로는 구관의 고전적인 조형성에 비해 증축동은 간결한 기하학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다. 신 구 건물간의 연결부위는 독립적인 스크린 벽의 형성과 연결통로의 강조를 통해 시간적인 켜를 공간적인 켜로 치환하면서 서로간의 이질성을 완충시키고 있다.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일반 강의동과는 달리 건물의 사용자와 기능이 분명했던 까닭에 건물의 내부는 명확한 구성체계를 지니고 있으며, 이에 따른 공간 구성 또한 독특하다. 내부의 구성은 건물 내 중앙부에 위치하여 동선과 공간의 질서를 부여하고 있는 복도를 중심으로 소극장, 촬영 스튜디오, 세트 제작실을 수용하는 12m 폭의 서측 특별교실군과 강의실, 연구실 등 대학의 일반기능을 담는 7.8m 폭의 동측 일반교실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의 공간은 중앙의 복도를 중심으로 상 하부 공간을 다양하게 오픈시키고 원형기둥과 천창 등을 활용하여 공간감과 자연광의 실내 도입을 최대화시키고 있다.

참고문헌; 충남의 건축(충청남도, 충남발전연구원/1999)

   

008
도고 컨트리클럽 하우스
Dogo Country Club House

설 계 감 리 ; (주)창조건축사사무소 조재원  
대 지 위 치 ; 아산시 선장면 신성리 113-8
지 역 지 구 ; 도시계획외 지역
대 지 면 적 ;    7,087.00㎡
건 축 면 적 ;    2,165.37㎡         건 폐 율 ; 30.55 %
연   면   적 ;    3,228.81㎡         용 적 율 ; 37.82 %
규         모 ; 지상 2층
구         조 ; 철근콘크리트조
주 요 용 도 ; 휴게시설
주 요 외 장 ; 화강석, 드라이비트
준 공 연 도 ; 1982년

골프장 내 완만한 구릉지에 위치한 클럽하우스는 장방형 평면의 1층은 중앙 홀을 중심으로 탈의실과 샤워실, 식당 등 공용기능을 수용하고 있는 반면, 중앙의 일부를 2층으로 돌출하여 회의실과 개실 등 보다 사적인 기능을 수용하고 있다. 1층의 외관은 특별한 치장없이 장방형 매스에 평지붕으로 단순하게 처리되어 있는 반면, 2층은 전통한옥의 기둥과 보, 처마를 추상화하고 모임지붕을 형성하여 조형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조형적으로 볼 때 1층은 2층을 위한 기단부 역할을 하고 있으나 2층이 사적인 기능 위주로 계획된 까닭에 비교적 넓은 평지붕 부분의 활용성을 기능상으로 적극 살리지 못하고 있는 아쉬움이 있다.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 현대화된 한옥의 멋을 풍기고 있지만 애매한 절충주의로 어색함을 주기도 한다.

참고문헌; 충남의 건축(충청남도, 충남발전연구원/1999)

 

009
순천향대학교 향설기념 도서관
Hyangseol Memorial Library of Suncheonhyang University

설 계 감 리 ; (주)이로재 건축사사무소 승효상
시         공 ;  (주)쌍용건설
대 지 위 치 ; 아산시 신창읍 읍내리 산 53-1
지 역 지 구 ; 공공시설 입지승인지역
대 지 면 적 ;   391,548.00㎡
건 축 면 적 ;      2,880.53㎡         건 폐 율 ; 0.74 %
연   면   적 ;     11,745.88㎡        용 적 율 ;  2.99 %
규         모 ; 지하 1층 지상 5층
구         조 ; 철근콘크리트조
주 요 용 도 ; 교육연구시설/도서관
주 요 외 장 ; 두께 3mm 알루미늄 쉬트, 세멘트 압축성형 패널, 두께 30mm화강석
준 공 연 도 ; 1992년

 캠퍼스 내 기존의 건물들은 저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각 건물의 개성 또한 불분명하기 때문에 학교캠퍼스가 한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솟아있는 향설기념 도서관은 캠퍼스 내 다른 건물과는 강하게 대비되고 있다. 이러한 대비는 기존의 무질서에 대한 반발이자 새로운 질서의 구축을 위한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은색 금속패널의 매끈함과 유리의 투명성을 살린 정교하고 감각적인 재료 사용이나 계단실 유리탑과 최상층에 돌출된 타원형의 시청각실, 지붕의 원통형 연결통로 등에서 보이는 강렬한 조형의 외관은 정보의 집합처로서 도서관의 현대성과 첨단성, 역동성을 복합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참고문헌; 충남의 건축(충청남도, 충남발전연구원/1999)

 

010
온양 제일교회
Onyang Jeil Church

설 계 감 리 ; 탑건축  
시         공 ; 조아건설(주)
대 지 위 치 ; 아산시 권곡동 219-5, 9, 45
지 역 지 구 ; 일반주거지역
대 지 면 적 ;   7,125.00㎡
건 축 면 적 ;   1,651.12㎡         건 폐 율 ;  23.17 %
연   면   적 ;   2,653.22㎡         용 적 율 ;  37.24 %
규         모 ; 지하 1층 지상 2층
구         조 ; 철근콘크리트조+글루램 특수목구조
주 요 용 도 ; 종교시실
주 요 외 장 ; 화강석 잡석쌓기
내 부 마 감 ; 라비스톤, 무늬목
준 공 연 도 ; 1992년

 대지 전면에 기존의 교육관이 있던 까닭에 비교적 간단한 기능이 수용된 예배당의 평면은 중층의 예배석을 지닌 타원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물고기의 형상을 상징하는 한편, 예배당의 주기능에 부속되는 성가대석과 음향실, 화장실, 계단실 부분은 외부로 돌출시켜 타원형의 외부 형상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외에도 상부 고창을 통해 채광이 되는 가운데 목재 합성보와 기둥이 노출된 예배당 내부는 구원의 방주를 상징하고 있으며, 동판 마감한 타원형 지붕은 아산시의 상징인 거북선을, 자연석과 전돌을 쌓은 외벽은 성채를, 목기둥 노출과 지붕선은 전통건축의 추녀를 상징하거나 은유하고 있다.

참고문헌; 충남의 건축(충청남도, 충남발전연구원/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