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건축

보령시-01

참고문헌; 충남의 건축기행'/엄은화(1999/중도일보 ), '충남의 건축(충청남도,충남발전 연구원 발핼/1999),

 

011
보령시청
Boryeong City Hall

대 지 위 치 ; 보령시 성주산로 77 (명천동 269-4)
지 역 지 구 ; 일반주거지역
대 지 면 적 ;  ㎡
건 축 면 적 ;  ㎡          건폐율 ; %
연   면   적 ;  ㎡          용적률 ; %
규         모 ; 지하 1층 지상 4층
주 요 용 도 ; 공공시설
구         조 ; 철근콘크리트 라멘조
외 부 마 감 ; 화강석 버너마감
준 공 년 도 ; 2002년

 1995년 설치된 보령시는, 원래1986년 대천읍이 보령군에서 분리되어 대천시로 승격되었다가, 1995년 대천시와 보령군이 다시 합쳐지면서 보령시가 되었는데, 현재 웅천읍과 10개면 5개동을 관할구역으로 하는 행정기관이다. 새로 지은 시청사는 특히 저층부의 고객만족실의 뚤린 지붕구조가 밝은 행정을 상징하듯 눈에 띄며, 바로 옆에 보령문화예술회관이 자리하여 이용의 편의성을 더욱 증대시켜 주고 있다. 전면의 입면의 단아하고 잘 균형 잡힌 모습이 안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012
천북중앙교회
Cheonbuk Central Church

대 지 위 치 ; 보령시 천북면
지 역 지 구 ; 일반주거지역
대 지 면 적 ;  ㎡
건 축 면 적 ;  ㎡          건폐율 ; %
연   면   적 ;  ㎡          용적률 ; %
규         모 ; 지하 1층 지상 2층
주 요 용 도 ; 종교시설
구         조 ; 철근콘크리트 라멘조
외 부 마 감 ; 적벽돌 치장쌓기

 천북면에 우뚝 솟으 이교회는 입면이 단아하고 잘 정돈된 모습으로 동네 가운데에서 우뚝 솟아 올라있다. 종탑의 구조가 마치 원두막같은 느낌이 들어 쉬었다 가는 교회의 짙은 인상을 풍기면서, 동네를 스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다. 일상적인 적벽돌 치장쌓기이지만, 조금은 복잡한 지붕구조가 많은 고민을 한 흔적으로 보여진다.

 

013
요나성당
Yona Catholic Church

대 지 위 치 ; 보령시 신흑동 2056
지 역 지 구 ; 준도시지역 운동휴양지구

대 지 면 적 ;  ㎡
건 축 면 적 ;  ㎡          건폐율 ; %
연   면   적 ;  ㎡          용적률 ; %
규         모 ; 지하 1층 지상 3층
주 요 용 도 ; 종교시설
준 공 년 도 ; 1999년

 천주교 대전교구에서 1999년 설립된 해수욕장을 이용하는 피서객들을 위해 21세기 관광사목으로 세워진 성당으로, 형태가 고래의 모습과 흡사하다. 연말피정을 위한 장소로 많이 애용되는 이곳은 해변으로부터 불과 500여m 정도 떨어져 있어 접근이 용이하고, 내부에 단체 숙박시설도 설치되어 있다. 2층에는 성당과 15인 단체실이 6개가 있고, 3층은 강당으로 계획되어 많은 신자들이 이용하고 있다. 외형에서 풍기는 단순한 형태가 아닌, 좀 복잡한 구조체의 돌출로 산만한 모습으로 보여지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잘 정돈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인근 한화콘도와 국민은행 대천연수원과 함께 많은 피서객이 이용하는 시설중 하나이다.

 

014
보령세무서
Boryeong Tax Office

대 지 위 치 ; 보령시 옥마로 36 (명천동 58-2)
지 역 지 구 ; 일반주거지역
대 지 면 적 ;  ㎡
건 축 면 적 ;  ㎡          건폐율 ; %
연   면   적 ;  ㎡          용적률 ; %
규         모 ; 지하 1층 지상 4층
주 요 용 도 ; 공공시설
구         조 ; 철근콘크리트 라멘조
외 부 마 감 ; 화강석 버너마감
주 차 대 수 ; 75대
준 공 년 도 ; 2003년

 1979년 장항세무서 대천지서로 개청하여, 1995년부터 보령세무서로 명칭을 변경하고, 1999년 장항세무서를 흡수통합하여 현재의 위치 2003년 새롭게 건물을 짓고 입주한 보령세무서는 시내에서 부여로 이어지는 성주터널의 입구 부분 언덕에 위치하여 있다. 특히 옥상부분에 설치된 녹색의 넓다란 파고라의 비상하는 형태가 서해로 날아 가려는 듯, 형태를 하여 민원인에게 믿음이 가는 형태로 접근하고 있다.

 

015
대천역
Daecheon Railroad Station

대 지 위 치 ; 보령시 내항동 343-1
지 역 지 구 ; 일반주거지역
대 지 면 적 ;  ㎡
건 축 면 적 ;  ㎡          건폐율 ; %
연   면   적 ;  ㎡          용적률 ; %
규         모 ; 지상 2층
주 요 용 도 ; 공공시설
구         조 ; 철근콘크리트 라멘조
준 공 년 도 ; 2007년

 장항선의 보통역으로 1929년 대천동 340-2 에서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여 오다가, 2007년 12월에 장항선 개량공사의 준공과 함께 서해안 고속국도 톨게이트가 인접해 있는 이곳으로 이전하여 단순하면서도 편리한 시설로 산뜻하게 변신하였다. 특히 보령 시내에서 서해안 최대의 대천해수욕장으로 이루는 지점에 위치하여 이용객들이 접근이 용이하며 포스트를 이용한 외형이 산책나온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주는 듯하여 경쾌함을 주고 있다. 또한 도시가 보령시로 명칭을 바꿨으나, 역사의 명칭만은 그대로 대천역으로 하여, 인지도를 높혀주고 있다.     

 

016
박신경외과 의원
Dr. Park's Neuro Surgery Clinic

설 계 감 리 ; (주)씨엔유건축사사무소 유병우, 설용찬
대 지 위 치 ; 보령시 대천동 108-21
지 역 지 구 ; 일반주거지역
대 지 면 적 ;     243㎡
건 축 면 적 ;     178㎡          건폐율 ; %
연   면   적 ;  1,090㎡          용적률 ; %
규         모 ; 지하 1층 지상 5층
주 요 용 도 ; 근린생활시설
주 요 외 장 ; 화강석판 붙임
구         조 ; 철근콘크리트 라멘조
준 공 년 도 ; 1987년

 구도로를 나서면서 청양으로 향하는 길섶에 우뚝 솟은 본 건물은 외장으로 화강석 판 붙임으로 둘러 쌓여진, 고급스러움을 발하는 조형미있는 5층의 의원 건물이다. 도로변의 건물이 갖는 외적인 이미지만 연출하였지만 말쑥하게 들어감과 나옴이 잘 조화를 이루면서, 출입구의 지붕을 원형으로 구성하여 면과 선, 평면이 잘 어울리어 지루함을 피해주는 효과를 내고있다. 자칫 단순 해질 수 있는 입면 임에도 불구하고 측면의 계단실에는 수직창을 길게 늘어뜨리고, 층별로 형태를 구성하면서 잘 정리하여 입면이 연출되어 마치 조각된 느낌이 풍기는 어색함이 없이 모나지 않은 입면을 소유하게 되었다.

 

017
한내대교
Hannae Great Bridge

대 지 위 치 ; 보령시 동대동+대천1동
지 역 지 구 ; 일반주거지역
대 지 면 적 ;     ㎡
건 축 면 적 ;     ㎡          건폐율 ; %
연   면   적 ;     ㎡          용적률 ; %
주 요 용 도 ; 교량
구         조 ; 철골조

 대천시가지에서 대천해수욕장으로 나가려면 지나는 대천천상의 다리인 한내대교는 동대동과 대천1동을 잇는 교각으로 조형미를 갖춘 형태로 야간에 오색조명을 하여 도시를 더욱 밝게하는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2개의 대형 아치가 동일선상으로 크게, 작게 원을 그리며 연결되어 원색인 빨강, 파랑색상으로 조화를 이룬 이 다리는 평면상으로도 정돈된 입체감이 있어 보이는 장점이 있으며 간결한 이미지가 더욱 눈에 들어온다.

 

018
최상집 의사(崔相集 義士) 유적(遺跡)

Memorial of Patriot Choi Sangjip

 

대 지 위 치 ; 보령시 웅천읍 대천리 향교말
지 역 지 구 ; 농촌취락지역
규         모 ; 묘 1기, 신도비 1기
소         유 ; 강릉최씨
준 공 연 도; 2006년              

 최상집(1849년-1090년)의사는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 출신으로 본관이 강릉(江陵)이고, 자(子)는 중일(重日, 仲一), 호는 남호(南湖)이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주권을 빼앗기자, 1906년 민종식(閔宗植)은 부여군 내산면 지티에서 의병을 일으켜 홍산, 서천, 판교, 웅천, 남포, 보령, 광천, 결성을 거쳐 홍주성을 공격하여 점령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때 최상집의사는 58세의 노구를 이끌고 의병을 모집하는 소모장(召募將)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왜병의 반격으로 홍주성이 무너지면서 의사는 포로가 되어 유준근, 이 식, 안항식, 신보균, 이상구, 문석환, 남규진 등과 함께 대마도 유배형을 받고 기약없는 기간의 고생을 하면서도 저들의 협박과 회유에 굴복하지 않고 절의를 지켰으니, 최상집 의사를 비롯한 이들을 '홍주의병 대마도 9의사'라고 한다. 몇 번에 걸친 감형이 이루어져 3년만인 1908년 10월달에 석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왔으나, 옥고의 후유증으로 병이 들어 이듬해인 1909년 6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1995년 정부에서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고, 2001년에 들어서 의사의 업적을 발굴하고 2006년 이곳에 추모비를 건립하고, 부여군 외산면에 있던 묘소도 뒷편으로 이전하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