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건축

부여군-00

참고문헌; 충남의 건축기행'/엄은화(1999/중도일보 기자), '충남의 건축(충청남도,충남발전 연구원 발핼/1999)'

 

001
금사리 옛성당
Old Geumsari Catholic Church



설 계 감 리 ; 공베르 (J.Gombert/孔安世)신부  
시         공 ; 직영+중국인기술자
대 지 위 치 ; 부여군 구룡면 금사리 334
지 역 지 구 ; 도시계획외지역 취락지구
대 지 면 적 ;   4,655.00㎡
건 축 면 적 ;     189.35㎡          건 폐 율 ; 4.07 %
연   면   적 ;     189.35㎡          용 적 율 ; 4.07 %
규         모 ; 지상 1층(당초 2 층)
구         조 ; 조적조
최 고 높 이 ; 6.56m
주 요 용 도 ; 종교시설
주 요 외 장 ; 적벽돌 및 회색벽돌 치장쌓기
지 붕 구 조 ; 맞배지붕/절충식
처 마 높 이 ; 3.6m
준 공 연 도 ; 1906년
문화재구분 ; 충남기념물 제143호

 부여읍에서 백제대교를 건너면 규암(육바위)이 나온다. 이곳에서 대천으로 향하는 국도를 타고 10여분 지나면 구룡평야가 펼쳐진 들판에 양지바른 농촌마을 속에 자리한 금사리 성당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초창기 설립시에는 충남을 공세리, 합덕 등의 네개의 관할구역으로 구분하여 관할하던 시절에 한 구역을 관장하던 성당이다. 원래를 규암에 자리를 하려 하였으나 다른 성당과 달리 신자들이 대지를 정하여 놓고서 1901년 5월 부여군 구룡면 금사리에서는 성전을 건축하는 대역사가 시작됐다. 공베르 신부 지휘아래 고용된 몇 명의 중국인 기술자와 신자들이 발벗고 성당건축에 참여했다. 성당 서쪽에서는 직접 황토를 구워 벽돌을 마련하고 지붕틀과 기둥재료로 사용할 목재는 내산면 남살매돌과 삼바실 푸른매 일대에서까지 벌목해 일일이 사람의 힘으로 운반했다.신자들의 피땀 어린 노동력과 정성 어린 성전건립 기금은 착공이후 5년이 경과한 1906년 4월 초에 성전 건축이라는 과업으로 결실을 맺었다.
  규모는 단층 55평. 현재 대전교구 내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건축인 금사리 옛성당은 이렇게 탄생하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교우들의 의지와 노력의 결실이다. 부여지역은 1801년 신유박해를 전후해서 이미 신자들이 거주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1866년 병인박해 때까지 인근 공주, 청양, 논산, 서천 등지보다 신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큰 박해를 받지 않았던 부여는 병인박해 이후 주변 지역의 신자들이 부여로 이주해 오면서 신자들의 공동체가 형성됐다. 당시 신자들이 정착한 곳은 청양의 산간지대와 인접한 부여군 은산면, 외산면, 내산면 일대.
 성당은 당시 공소가 자리했던 금사리의 교우 몇 몇이 1900년 9월 서울로 상경해 교구장 뮈델 주교에게 부여지역에 본당을 설치해 줄 것을 요청함으로써 이뤄졌다. 이듬해 4월 뮈델 주교는 공베르 신부를 홍산 지방에 임명, 파견한다.  기록에 의하면 공베르 신부는 군산포로 상륙해 본당을 설치할 장소를 물색했다고 전한다. 마침 금사리(당시 쇠양이)에 적당한 장소가 나타나면서 이곳이 본당의 중심지가 된 것. 이곳은 부유하게 살던 양반 가문이 몰락한 흉가라 하여 원매자가 없던 부지. 금사리의 가옥 3동 35칸의 집과 대지, 8마지기 답, 큰갈망굴과 율암리산 임야를 합해 1300냥으로 매입했다.본당 유치부터 신축까지 신자들의 염원으로 축성된 금사리 옛 성당은 동·서 절충양식을 지니고 있는 초기 성당 건물이다. 건물 구조는 적색과 회색벽돌로 쌓아 올렸고 지붕틀은 절충식이다. 지붕면은 맞배지붕의 형태로 함석을 올렸고 정면 중앙에 목조 종탑과 십자를 세웠다. 내부 내벽은 회반죽으로 마감했고, 바닥은 종방향으로 나무널을 이었다. 측벽은 장축방향으로 8개 베이로 구성돼 있으며 그 사이 아치 형태의 오르내리창을 설치해 정교하고 우아한 모양새다. 건물 규모는 장방형으로 양 측면에 부가된 출입구가 있어 진출입의 편리를 꾀했다. 평면 구성은 회중석과 회랑의 구별이 뚜렷한 바실리카식을 탈피했다. 남자와 여자의 자리를 구분하기 위해 성당 안을 2랑식(二廊式)으로만 구획하고 본당 안 나무 기둥에 나무판을 설치해 남녀가 유별한 가운데 미사를 보았다.
 금사리 옛 성당의 신축은 대중과 친숙하기 위한 배려가 눈에 띈다. 부지부터 여느 성당과 다르다. 보통 종교건축물은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했고, 60년대가 지나면서부터 시내 안으로, 동네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늘과 가까이 하기 위해서 라고도 하지만 어쨌든 과거 종교의 권위주의적인 면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98년전 이미 금사리 성당은 구룡평야 가운데인 평지에 자리를 잡았다. 흉가로 방치된 저택을 부지로 선정했고, 보수적이지 않은 교구의 이해로 낮은 곳에 부지를 잡았다. 이로 인해 신축이래 지금까지 동네 아이들이 언제든 성당 마당에서 뛰어 놀 수 있고 주민들이 정자아래 바람 쐬러 나와 앉아 있는 이곳은 짐 진이 들의 쉼터로 문을 개방해 놓고 있는 곳이다.
 건물의 형태도 이국적인 서구 양식주의를 탈피했다. 뾰족한 첨탑, 거대한 규모, 화려한 장식이 있는 양식주의를 차용하지 않았고, 구태여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한 건축적 장치를 도입하지도 않았다. 여기에 중국인 기술자가 건축에 참여하면서 한국 전통양식보다는 중국식에 가까운 형태와 이미지를 취하게 됐다. 20세기를 지켜본 금사리 성당은 일제시대 때는 일장기를 건 채 미사를 보고, 힌국동란때는 신부를 잃고 성당이 몰수되는 역경을 겪는 등 풍상으로 노후한 상태다. 기와에서 함석으로 바뀐 지붕과 홈통이 낡아 누수가 발생하고, 창틀은 제 구실을 못할 만큼 낡았다. 북측의 외벽 및 벽돌 조적 기둥은 기울임 현상을 보이는 등원형에 충실한 보수가 필요한 실정이었는데,  다행히 충남도가 보수 공사를 시행하여 좋은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1968년 현재 성당이 준공되면서 철거된 종탑의 복원 문제부터 시작해 원형에 충실한 복원은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2000년대 초반기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사업이 완료되어 지금은 보존상태가 양호하게 유지하고 있다.

참고문헌; 嚴殷和기자 /1999.11.8.중도일보

 

002
옛 금사리성당 사제관
Old Parsonage of Geumsari Catholic Church
 

 

설 계 감 리 ; 공베르 (J.Gombert/孔安世)신부  
대 지 위 치 ; 부여군 구룡면 금사리 334
지 역 지 구 ; 도시계획외지역 취락지구
대 지 면 적 ;   4,655.00㎡
건 축 면 적 ;     72㎡          건 폐 율 ; 4.07 %
연   면   적 ;     72㎡          용 적 율 ; 4.07 %
규         모 ; 지상 1층(
구         조 ; 조적조
주 요 용 도 ; 종교시설
주 요 외 장 ; 적벽돌 치장쌓기
지 붕 구 조 ; 모임지붕/당초 2겹
준 공 연 도 ; 1907년

 금사리 옛성당의 경내 남쪽에 있는 구사제관은 금사리 성당이 준공된 이듬해 공베르 신부에 의해 1907년 건립된다. 가로 세로 12m×6m 크기의 면적을 지닌 이곳은 중국식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건물로 90여 년 세월동안 외형과 용도가 조금씩 달라졌지만 당시 사제관을 모습을 살필 수 있는 흔적과 자료가 남아있다.
 1993년 개조·보수 이전까지 구사제관의 지붕은 회랑 끝까지 연결되는 눈썹지붕으로 겹지붕 형태를 취했다. 지붕아래는 처마 끝을 따라 길게 늘어진 처마를 받치는 여러 개 기둥을 세워 회랑(복도)을 형성했다. 긴 처마로 무겁고 둔탁한 인상을 주는 이 건물은 중국 무술영화 속에서 볼 수 있는 옛 중 국건물의 전형적인 모양새다. 건물 일부에는 지하층을 둬 창고로 사용했고 건물의 기단과 창문 아랫부분까지 외장은 자연석을, 윗 부분은 적벽돌로 마무리했다. 구사제관은 지난 93년 노후한 구사제관의 개·보수 이후 지붕의 형태는 한옥 팔작지붕 형태를 취하게 됐고, 보일러를 설치하기도 했던지 하층은 흙으로 메꿔진다. 건물의 용도도 역대 신부들이 사용하던 구사제관은 금사리 출신 교우들에게 신앙의 뿌리가 되고 잊혀져 가는 고향의 명상의 쉼터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명상의 집으로 변경된다. 이후 대건의 집으로 명칭이 바뀌어 회의실, 손님주거, 음식준비 등을 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본당을 복원하면서 이 사제관 건물의 지붕도 원래처럼 고증에 의하여 겹지붕으로 유지되었어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쉽다.

참고문헌; 嚴殷和기자 /1999.11.8.중도일보

 

003
규암성당
Gyuam Catholic Church


설 계 감 리 ; 씨엔유건축사사무소+박만식
대 지 위 치 ; 부여군 규암면 내리
지 역 지 구 ; 일반주거지역
대 지 면 적 ; ㎡
건 축 면 적 ; ㎡           건폐율 ; %
연   면   적 ; 332㎡      용적률 ; %
규         모 ; 지상 1층
구         조 ; 조적조
외 부 마 감 ; 몰탈위 수성페인트칠
준 공 년 도 ; 1971년

 백제의 옛 추억이 듬뻑 담아있는 부여의 중심축은 지금같이 교통이 발달하기 전에는 백마강을 끼고 있는 규암이 단연 압도적 이었다. 그러나 60년대 초에 백제대교가 놓이면서 수복정 앞을 지나던 배다리가 걷히고, 모든 차량들이 도강을 위하여 머물지 않고서 통과함으로써 기능이 약화되어 서서히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 마을이다. 지금도 여섯 개의 바위에 어린 전설을 담고 있는 육바위(窺岩)라는 옛이름으로 불리우는 규암에서 장항편인 반산 쪽으로 향하다 보면 은근히 올라서는 언덕의 끝 부분 주거밀집지역에 조용히 자리한 성당으로 입구를 들어서면서 넓은 원정의 모습에서 다감한 느낌을 주고 있다. 단순하면서도 정리된 입면에 군더더기가 전혀없는 모습은 정갈한 건축의 표현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박만식교수의 못다한 그림(2000.8)
 

 

004
부여성당
Buyeo Catholic Church

설 계 감 리 ; 씨엔유건축사사무소+박만식
대 지 위 치 ; 부여군 부여읍 읍내리
지 역 지 구 ; 일반주거지역
대 지 면 적 ; ㎡
건 축 면 적 ; ㎡           건폐율 ; %
연   면   적 ; 266㎡           용적률 ; %
규         모 ; 지상 1층
구         조 ; 조적조
외 부 마 감 ; 몰탈위 수성페인트칠
준 공 년 도 ; 1972년

 백제의 옛 도읍인 부여의 도심, 계백장군 동상이 있는 로터리 부근에 자리한 성당으로 입구를 들어서면서 건물의 배치에서 부터 짜임새가 확연히 들어나는 탄탄한 느낌을 주는 입면을 소유하고 있다. 기다란 하얀벽에 빨간 경사지붕으로 구태연한 색상의 도시 이미지를 앞서 이끌어 주는 기능을 스스로 자임한 건축물이다. 특히 70년대에 건물의 형태 구성이 뒤떨어지는 시점이었고, 읍단위 지역에 들어서는 건물들이 대부분 개발 위주로 등장하거나 고건축의 모티브를 흉내내어 어물쩡한 모습으로 입면이 구성되어 갈때 자기의 표현이 확실한 평면위주의 실용적인 구성에 필요 간결한 입면의 표현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건축물이다. 

참고문헌; 박만식교수의 못다한 그림(2000.8)

  

005
부여 청소년 수련원
Buyeo Youth Training Center

 

설 계 감 리 ; 정원건축사사무소 박윤웅
시         공 ; (주)영진건설산업
대 지 위 치 ;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9-9
지 역 지 구 ; 일반주거지역
대 지 면 적 ; 12,936㎡
건 축 면 적 ;    3,505㎡           건폐율 ; 27%
연   면   적 ;    6,212㎡           용적률 ; 41%
규         모 ; 지하 1층 지상 2층
구         조 ; 철근콘크리트 라멘조
외 부 마 감 ; 화강석판 붙임
준 공 년 도 ; 1991년

 정면에서 바라볼 때 커다란 2개의 건물 매스와 이를 연결하는 낮은 관리동 매스가, 대지의 북동측 경계선을 따라 배치되어 있는 복합적인 건물군의 모습을 띠고 있다. 전면부의 개방된 외부공간에는 다목적 운동장 및 주차장을 포함한 진입광장이 대지의 형상에 맞춰 양측에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지하층에는 식당을 포함하여 건물의 각종 부대시설, 그리고 회의실이 들어서 있다. 주 출입로에서 직접 연결되는 지상 1층에는 건물별로 각각의 출입구가 있어, 강당으로도 사용되는 실내경기장 그리고 전시실, 그밖에 관리·사무실로도 들어갈 수 있다. 우측 건물에는 서고를 포함한 독서실이 2층에 걸쳐 개방되어 있는 홀을 중심으로 마주보고 있으며, 옆의 사무실과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전체 외관은 축대와 같이 경사진 건물의 모서리 처리와 화강석 마감 위에 기와를 얹은 낮은 지붕의 건물 매스로, 균형 있는 조화를 이루어 한국적 전통성을 현대화하고 있다. 또한 건물의 주요 상부를 천창(Top light)으로 처리하여 실내에 자연 채광을 부드럽게 도입하고 있다. 외부공간은 전통문양에서 따온 커다란 격자형 무늬로 바닥포장을 했다.

참고문헌; 충남의 건축(충청남도, 충남발전연구원/1999), 정원건축(1999)

 

006
부여 국립문화재 연구소/옛 부여박물관
Buyeo National Cultural Property Center/Old Buyeo National Museum

설 계 감 리 ; 공간건축사사무소 김수근
대 지 위 치 ;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28-4
지 역 지 구 ; 일반주거지역
대 지 면 적 ; ㎡
건 축 면 적 ;     654㎡           건폐율 ; %
연   면   적 ;  1,080㎡           용적률 ; %
규         모 ; 지상 2층
구         
조 ; 보강 콘크리트 블럭, 목조트러스
외 부 마 감 ; 노출콘크리트 콘크리트 블록위 수성페인트 목재위 오일 스테인
준 공 년 도 ; 1967년

 옛(舊)국립박물관과 더불어 일본의 신사(神社)와 닮았다는 논란과 함께, 한국건축의 전통논쟁으로 많은 화제를 일으켰던 건물로 1965년도에 현상설계에 의하여 선발되었다. 부소산 초입의 경사진 곳에 위치하는 부지는, 전면에 트인 조경 공간을 지나 제법 높은 계단을 오르면 박물관으로 이른다. 지상 1층에는 각각의 출입구가 따로 있는 전시실과 사무실·관리실이 있다. 지붕의 천창을 통하여 은은한 자연 채광이 드리우는 2층까지 개방된 전시공간 위로 계단을 오르면, 2층의 회의실과 부속실, 그리고 측면의 전시실이 눈에 들어온다. 박물관의 충실한 기능보다는 강렬한 조형과 극적인 공간감의 연출을 의도했던 이 건물은, 표현된 문양과 장식물 등이 한국적 조형에 대한 표현의지를 보이고 있다. 내부 평면이 단조로와, 장변이 약 38m에 달하는 내부공간의 크기에 비해 전시공간이 조금은 단순하게 놓여있다. 외부로 서까래를 연상시키는 콘크리트 골조와 함께 두드러지는 것은, 역시 지붕 위로 둥굴게 솟아오른 원형의 투명한 천창들이다. 마룻대에 해당하는 중앙 상부에도 천창을 내어 한옥 기와지붕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최대한 자연 채광을 유입시켜 전시공간을 밝혀 주고 있다. 이후 1993년 새 부여국립박물관을 짓고 옮겨짐으로 인하여, 현재는 국립 문화재연구소로 사용되고 있으며, 주변이 백제왕궁지로 알려져 발굴작업이 진행되어 어수선하다.

참고문헌; 충남의 건축(충청남도, 충남발전연구원/1999)

 

007
한국전통문화학교
Korean Traitional Culture School



설 계 감 리 ; 건축사사무소 기오헌 민현식
대 지 위 치 ;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430
지 역 지 구 ; 일반주거지역
대 지 면 적 ; 213,617㎡
건 축 면 적 ; ㎡                     건폐율 ; %
연   면   적 ; 36,837㎡           용적률 ; %
규         모 ; 지하 1층 지상 3층
구         
조 ; 철근 콘크리트 라멘조
준 공 년 도 ; 2002년

 한국전통문화학교는 1998년 12월 백제의 고도인 부여에  터를 닦고 건립공사를 시작한지 4년만에 교육시설을 완공하고, 2002년 7월에 준공식을 하였다. 1996년 4월 한국전통문화학교설치령 제정으로, 그 탄생의 기반을 마련한 한국전통문화학교는 현상설계에 의하여 기본안을 채택하여, 1998년 12월 첫삽을 뜬 후 4년간 총 5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대학본부 및 강의시설 등 15개동의 교육기반시설을 완공하였다. 2000년 3월 개교하여 21세기 우리문화를 이끌어 갈 인재의 산실로, 전통문화 창달과 한 차원 높은 문화재 보존관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참고문헌; 국가문화유산 종합정보사이트 

 

008
백제역사문화관
Baekje Historical Museum

  
 

대 지 위 치 ; 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575
지 역 지 구 ; 일반주거지역
대 지 면 적 ; ㎡
건 축 면 적 ; ㎡                 건폐율 ; %
연   면   적 ;  8,797㎡        용적률 ;  %
규         모 ; 지하 1층 지상 2층
구         조 ; 철근콘크리트 라멘조
준 공 년 도 ; 2006년

 1992년부터 백제문화권 득정지역에 대한 종합개발의 기본계획을 세우고 시작한 백제문화권 개발의 상징적인 건물로 전통문화학교에 이어 세워진 전시관이다. 이 백제역사문화관은 백제 역사와 문화의 전반에 대한 자료수집, 보존, 연구, 정보제공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출토유물 전시위주에서 벗어나 첨단 영상기법 및 전시매체를 활용하여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려져 온 백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갖게 하는 교육의 장으로서의 역할과 백제사를 다루는 종합적이고 전문적인 박물관으로서 명실공히 백제문화의 중심체로서 자리 매김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쉽게 주도로에서의 접근도 용이하지만 들어서는 입구광장에 열린공간에 쉽게 백제문화를 만날수 있는 시설을 갖추어 더욱 친근한 느낌이 든다.

 

009
부여장로교회
Buyeo Presbyterian Church

 

설 계 감 리 ; 정원건축사사무소 박윤웅
대 지 위 치 ; 부여군 부여읍 관북리 81-6
지 역 지 구 ; 일반주거지역
대 지 면 적 ; 1,761㎡
건 축 면 적 ;    768㎡            건폐율 ; 43.6%
연   면   적 ;  2,095㎡           용적률 ;  75.4%
규         모 ; 지하 1층 지상 2층
구         조 ; 철근콘크리트 라멘조
외 부 마 감 ; 적벽돌 치장쌓기
준 공 년 도 ; 1989년

 1951년 창립된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교단으로 충남노회에 소속된 교회이다. 부소산으로 들어가는 입구 부분인 서편에 위치한 이교회는 적벽돌 치장쌓기로 온순한 지붕선과 함께 잘 정돈된 모습으로 보이는데, 주 출입구에 형성된 많은 수의 옥외계단이 산만한 듯 보이지만 잘 정돈된 종탑과 함께 어울리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참고문헌 ; 정원건축(1999)

 

010
삼정 부여유스호스텔
Samjung Buyeo Youth Hostel

 

대 지 위 치 ;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 105-1
지 역 지 구 ; 일반주거지역
대 지 면 적 ; ㎡
건 축 면 적 ; ㎡            건폐율 ; %
연   면   적 ;  ㎡           용적률 ;  %
규         모 ; 지하 1층 지상 2층
구         조 ; 철근콘크리트 라멘조
외 부 마 감 ; 적벽돌 치장쌓기

 구드래 조각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부근, 뒤로는 부소산성이 병풍같이 서있고 그 절벽을 휘돌아 가는 백마강의 전경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이 유스호스텔은 이용하기가 편리하여 부여에서 가장 알려져 있는 숙박시설이다.